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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기#2 - 기억에 대한 변명

돌아보기#2 - 기억에 대한 변명


그런 날이면 밤과 어둠이라는 허허한 시간의 차원과

텅 빈 학교 운동장이라는 공허한 공간의 차원을

살갗에 선 잔털을 헤아릴 만큼 세세하게 인지할 수 있었고,


그 두 개의 차원이 기어이 발생시키는 간극이 주는 필연적인 두려움과

아무리 한다 해도 결코 피할 수 없을 거라는 큰 두려움에

그것들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에 동반하게 될 거라는 더 큰 두려움을,

그리고 결국에는 그렇게 되는 것이 숙명 때문이라는 것을

어둠이 운동장을 집어삼키듯이, 느리지만 분명하게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피할 수도 그렇다고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타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자의에 의한 선택의 것일 수도 있는

그런 날들이 기억의 선반에 희뿌연 먼지가 가득 내릴 만큼이나 해와 해를 거듭하면서 계속되었고,

그 소년은 어찌어찌 시간을 호흡하며 성장하여

지금이라는 시간에 들이켜야만 하는 통념적인 호흡보다는

느껴지는 것과 같이 만질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좇으려는

타인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가슴에서는 현명함이 넘쳐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나라는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인지.”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은 대관절 무엇인지.”

‘내 안의 나’라는 것이 과연 있기는 하는 것인지,

내가 좇는 것이 나 자신인지, 세상인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늘 빈 것이 아쉽기에, 하긴 그것조차 없는 삶은

검은 어둠에 휩싸여가는 학교운동장보다 더 먹먹할 것만 같아

어제와 제귀적으로 반복되는 그 전의 어제들과 같이 여전히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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