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록 파릇한 햇살이 더벅머리 위에서 반짝이던 시절부터,
아니 그 보다 더 이전의 까까머리 학창 시절부터 긁적였던 텍스트들을
세월의 나이테를 칭칭 감고서야
한 올 한 올 꼬아, 한 땀 한 땀 엮어내고 있습니다.
‘스물’이라고 읽게 만드는 숫자가 앞자리를 차지하고서는
결코 내려서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은
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 어떤 스케치로도 그려낼 수 없는 그 시절의 나는
해진 노트 속 텍스트들에게 박제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추억이란, 그냥 되새겨봐야만 하는 것일 뿐이고
막상 달려들게 되면 읽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흐려진다는 것을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때늦게야,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래도 이왕 내친걸음이니 갈 수 있는 곳까지는 가보려 합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얼마나 걸리지는 알 수 없지만,
삶이란 게 원래 이런 것이었기에,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그냥 뒤적여가며 도르고만 있습니다.
끝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는 것은
어딘가에는 끝이 있음을 알아차렸다는 것이기에
자연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야 두고 온 그것들에게, 그곳들에게,
조금씩을 더해 넣거나 떼어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만큼이나 시간의 흐름은
그리움 속을 부유할 수 있는 애절한 현명함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