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마치자 중학교 시절이 마중 나왔고 연이어 고등학교 시절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생이 되어 갔다.
상급학교에 올라간 그 아이를 아직도 아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한 면이 있지만 여태까지 그렇게 불러왔으니 계속해서 아이라고, 문맥에 따라 가끔은 소년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아무튼 학교의 명칭이 바뀌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아이는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얼마나 현실적인 것인지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소년이 된 아이는 꾀를 내어, 또는 재주껏, 아니면 적당하게라도 해서 어떻게든 그림을 그리면서 지냈다.
사실 음악과 달리 그림을 그리는 것에는 값비싼 도구나 별도의 레슨이 필요하지 않았다.
스케치북에 스케치용 연필과 지우개, 플라스틱 팔레트와 플라스틱 물통, 튜브에 담긴 물감 몇 개와 넓고 좁은 몇 자루의 붓만 있으면 얼치기 소년 화가 흉내내기에는 그리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의 주머니 사정에 있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싸구려 화구들도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새고 있든 쪽박이 상급학교에 올라갔다고 해서 새지 않을 리는 없었다.
머리가 조금 굵어진 아이가 찾아낸 방법은 학급친구들 몇몇의 그림을 대신해서 그려주고 물감이나 붓, 스케치북 따위의 화구들을 그 대가로 받는 것이었다.
미술시간이면 그날 집에 가기 전에 완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소주제가 종종 나왔고, 거기에 더해 다음 주 미술시간까지 제출해야 하는 대주제가 나오기도 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아이의 그림 그리는 손이 무척이나 빨랐다는 것과, 아이가 선생님에게 들키치 않을 만큼 ‘전혀 다른 사람이 그린 것처럼 보이는’ 적당한 변형들을 문제없이 그려낼 수 있었다는 것과, 아이가 그것을 실행에 옮길 만큼 대담한 성격이었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이름으로 제출한 그림의 점수는 언제나 반에서 가장 높았지만, 아이의 이름으로 제출한 그림들의 점수는 항상 80점대 중반이었다.
시선이 다른 각도와, 겹침을 찾아볼 수 없는 색상, 분위기가 다른 톤, 느낌이 다른 질감으로 동일한 주제에 대해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림을 부탁한 친구들의 실력을 기준으로 해서 그 보다 약간만 높은 수준으로 그려주었으며, 매 번 한 두 장의 변형된 그림만을 더했기에, 단 한 번의 문제없이 그 시절이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잘한 짓이 아니란 걸 알긴 하지만 지금에 와서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 시절에 아이가 처했던 경제적인 여건을 제대로 안다면, 부족한 화구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을지를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한다면, 그래서는 안되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행여 그렇게 말한다면 책임 없기에 입 밖으로 뱉어낼 수 있는 대책 없는 간섭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궁했기에 어떻게든 통했던 그 시절의 시간도 언제나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3학년이 되자 더 이상의 미술실기과제는 없었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는 중요과목에 대한 공부가 더 중요했기에 3학년 때의 미술수업은 그 자체가 아예 기억에 남아 있질 않다.
어쨌든 중학교 1학년과 2학년 시절의 미술수업 덕분에 일구었던 화구의 풍족함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