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의 이름과 로마의 영향에 대한 고찰

세 번째, 카라바조의 이름은 로마시절에 카라바조로 고착되었을 것이다.

밀라노는 큰 도시이기 때문에 작은 마을의 지명인 카라바조를 사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 메리시가 카라바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버전은 카라바조가 로마에 도착하고 나서의 상황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당시 로마는 ‘영원의 도시’라고 불리고 있었던 세상의 중심이었다.


따라서 로마는 이탈리아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전역에서 내로라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모여들었던 예술과 문화의 중심도시였다.

당연히 그들 중에서는 밀라노에서 온 예술가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은 다른 예술가들의 이름과 혼동될 여지가 있는 흔한 이름이었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identity)이며 그 사람 자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밀라노 출신의 미켈란젤로’라는 호칭은 타인에게 카라바조를 특정 짓게 하는 것에 있어 부족함이 있었을 것이다.


로마에 발을 디딘 후 여러 해 동안 카라바조는 철저한 무명화가에 불과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카라바조는 다른 화가들과 예술품 거래상들, 예술작품 제작을 후원하는 귀족들과 성직자들에게 자신의 이름 정도는 각인시킬 수 있는 감상적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화가로서 뛰어난 실력도 중요하지만 무명의 화가에게는 그들이 자신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을 것이다.

카라바조라는 작은 시골마을의 지명을 자신의 이름으로 소개함으로써 '탁월한 실력을 갖춘 북부의 작은 시골마을 출신 화가'라는 감상적 이미지를 그들에게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다른 예술가와 중복의 우려가 전혀 없는 작은 시골마을의 지명인 ‘카라바조’를 자신의 출신지이자 이름으로 사용함으로써 차별화를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카라바조가 로마로 거처를 옮긴 후 초창기에 스스로가 카라바조라는 지명을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밀라노 시절부터 카라바조라는 이름을 사용했을 수는 있지만 그때까지 완전히 고착화된 것은 아니었고, 로마로 거처를 옮긴 후에야 화가로서 카라바조란 이름이 고착화된 것일 수 있다.


물론 로마에서도 주변의 형편 상 타의에 의해 카라바조라고 불렸을 수도 있겠지만, 카라바조를 익히 알고 있는 예술애호가들이라면 “카라바조라면 스스로가 그랬을 것이다.”는 견해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 있는 하나의 도시로서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도, 비록 로마만큼은 아니었지만, 로마에 버금가리만큼 큰 명성을 가진 대도시였다.

따라서 당시 로마에는 카라바조 이외에도 수많은 밀라노 출신의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었을 것이기에 밀라노를 출신지의 이름으로 사용하기에는, 비단 카라바조뿐만이 아니라 밀라노 출신의 예술가 모두에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지명을 말하더라도 그것의 위치를 금방 알아차리기 어려운 작은 타운 출신의 예술가 경우에는 그 타운의 지명으로 이름을 대신해서 사용할 수 있었겠지만, 큰 도시 출신의 화가인 경우에는 타인과의 중복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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