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가 카라바조로 불리게 된 것에 대해

카라바조가 카라바조로 불리게 된 것에 대해


여러 해 동안 카라바조의 작품들과 삶의 궤적을, 연구자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더듬고 있다.

그동안 알게 된 것 중에 하나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카라바조를 안다.”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글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카라바조는 ‘세상에 떠도는 무수한 루머를 바탕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이 만들어낸’, 그래서 실체조차 없어 보이는 허상 같은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원래 대중이란 믿고 싶은 것만 걸러서 믿고, 듣고 싶은 것만 걸러서 듣는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그들은 자신의 주관이 만들어낸 것들을 객관적인 것이며 그래서 그것들을 지식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다.

분명 카라바조로써는, 살아서도 그랬던 것처럼 죽어서도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그를 좇다가 보면 궁금증이 더해져만 간다. 미켈란젤로 메리시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이 ‘카라바조’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된 것을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카라바조라는 마을에서 6살의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연이은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고, 젊은 나이에 가정을 책임지게 된 홀어머니와 살아가다가, 13살에는 그녀의 죽음마저 지켜봐야만 했던 곳이 그곳이었다.


카라바조로서는 그곳을 떠올리는 것조차 피하고 싶었지 않았을까.

그 시골마을의 지명이 자신의 이름을 대신하게 된 것을 카라바조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피할 수 없었기에 그냥 체념하며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그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을까.


카라바조라고 불린 것은 그에게 비극이었을까, 아니면 희극이었을까.

카라바조라고 불리는 것이 그가 저지른 여러 ‘불가해한 기행들’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어찌 되었건 간에 카라바조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로서 카라바조의 이름에 대해 알려져 있는 기존의 주장들을 검토해 보면, 듣기에 따라서는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 흥미를 돋우기 위해 지어내거나, 어떤 의도를 가지고 주관적인 채색을 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의 눈초리를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어떤 일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기록이 꼭 ‘실제로 있었던 일’만을 옮겨 적어 놓은 ‘완전한 사실’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기록이란 것에는 그것을 옮겨 적은 이의 사상과 추측에다가 여러 가지 상상들이 원래의 사실들과 혼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글이란 게 그것을 쓰는 이를 닮기 마련인 것처럼, 기록 또한 그것을 문자화하는 이를 닮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기록들은, 비록 그것에서 상당한 추측과 각색의 흔적이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랬을 법하여, 사실이라고 인정하여도 될 만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게 ‘역사’ 또는 ‘역사적 사실’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다. 예술에 있어서 그런 것들은 ‘예술사’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어쨌든 기록과 관련되어 얘기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사실은 “기록은 옮긴이의 생각과 사상을 무척이나 닮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기록하는 이는, 자신이 텍스트화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목적의식과, 그것에 따른 책임감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기록은 어떤 사실을 글로 남기는 행위이기에 글에 새겨져 있는 문체가 바로 ‘쓰는 이 자신’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가 카라바조가, 카라바조라는 이탈리아 북부의 한 작은 마을의 지명으로 불리게 된 것에 대해서는, ‘빈치라는 지역 출신의 레오나르도’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지명을 포함한 이름’이나 ‘다 빈치’라는 ‘지명’만으로 불리게 된 사례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사실일 것 같은 추정의 잔재들을 더듬어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카라바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이 적어도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카라바조 출신의 미켈란젤로)라고는 불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카라바조는 왜 지명으로만 불리게 되었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오직 카라바조 자신만이 분명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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