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붉은 우체통 하나가 싸리문 누렁이처럼 묶여 있는 시골마을 우체국에는 돌아보면 안 될 철 지난 이야기가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늙은 창부의 철 지난 화장기 같기도 하고 장날 아침 댓바람에 마실 나온 종종걸음 아낙의 철없는 화장기 같기도 해서 세상 외지게 수수하지만 애절하게 고웁다.
행여 누군가 깨울 새라 가만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늦은 오후의 마른 햇살 줄기가 희뿌연 먼지 길을 곧이 따라 이 편 저 편 아무런 가림 없이 나른하게 조사되고 있고, 낮은 칸막이가 막아선 저기에서는 종이 편지지 두어 번 접어 물풀 꾹꾹 발라 밀봉한 사람들의 사연들이 쭈뼛쭈뼛 늦가을의 건초더미 마냥 세월을 삭혀가고 있다.
텅 텅 네모난 실내공간을 공명하는 진동은 들판에 부는 겨울바람의 숨소리 같이 날카롭기 그지없고,
보내는 이 잊지 말라는 각인을 작정했다는 듯 흠씬 두들겨 맞은 사연들은 저마다의 퍼런 멍을 둥글게 받아들이고 있다.
늦어진 허락이 부끄러운 것일까, 늦어진 후회가 부끄러운 것일까, 일순 고개를 툭 떨구는 것을 보면 그 멍은 몸에 새겨지는 아픔이 아니라 가슴에 새겨지는 슬픔일 수 있겠다고, 그래서 치유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먹먹한 생각을 하릴없이 갖게 만든다.
그러다가 주머니에서 졸고 있는 동전 하나를 자판기의 좁은 구멍 안으로 밀어 넣고서는 우우웅 비명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지는 걸쭉한 커피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도토리 가루를 갈아 넣은 따뜻한 막걸리 맛은 어떨지, 저녁에는 도토리묵 한 사발에 대운 막걸리를 들이켜고 좋겠다는, 실없는 생각이 들어 피씩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본다.
찰칵찰칵 벽시계의 진동을 따라 호두까기 꼬마병정들이 자박자박 행진하듯이 홀짝홀짝 뿌연 갈색의 눅눅한 유혹을 기꺼이 들이킨다.
때가 되었나 보다.
그제야 차오른 보잘것없는 용기에 꼬깃꼬깃 묵혀두었던 사연을 우체통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바닷가 바위틈의 따개비 마냥 시골마을 모퉁이에 박혀 있는, 가을 햇살에 잘 마른 고추빛을 닮은 그곳 우체국은, 가슴에 밀봉시킨 지난날의 사연들만큼이나 아련해서 슬프지만, 여전히 어여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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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에 유난스레 시골 우체국을 찾아다녔다.
문 밖을 그냥 서성이다가 그냥 돌아가기도 했었고,
100원 동전 하나에 구석진 자리를 커피가게 삼아 한나절을 보내기도 하였다.
먼지 낀 작은 창으로 몇 줄기 오후 햇살이 길게 걸릴 때면,
실내에 자욱했던 먼지는 잘 닦인 신작로처럼 빛의 길을 만들었다.
그 먼지빛 길이 끝나는 즈음에 수북하게 쌓여있던 편지 봉투들은,
삐죽이 튀어나온 물풀의 마른 자욱이 더욱 퍼석하게 만들었고,
'텅 텅' 박자 맞춰 얻어맞는 소리가 나의 가슴마저 퍼렇게 멍들였다.
하늘 구름이 뿌연 날에는
정성스레 눈인사하던 몸집 굵은 여직원 누나의 복스런 웃음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 그 편지들에게 빼곡하게 담았을 사연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