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카라바조와 스승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미술에 대해

제자 카라바조와 스승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미술에 대해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다른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화풍들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카라바조는 바로크 미술이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화가이다.

이 말은 “카라바조는 다른 화가들의 영향을 받긴 하였지만 이를 혁명적으로 진화(revolutionary evolution)시켜 새로운 화풍을 창조해 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것의 창조는 기존에 있어온 것들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법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완전한 창조’란 오직 신(God)만이 가능한 것이기에 인간에게 허락된 창조란 ‘기존의 것들에 대한 남다른 해석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카라바조는, 당대와 이전에 있어온 화풍들을 남다르게 해석하고 이를 혁명적으로 진화시켜 바로크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천재화가인 것이다.

카라바조의 작품을 감상할 때면 <위대한 카라바조>(The Great Caravaggio)라는 말이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연유(緣由)에서이다.


카라바조의 그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화풍으로는, 십 대와 이십 대 초반의 카라바조가 그림을 익히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해 가던 시기에 이탈리아 전역에서 유행하던 [후기 마니에리즘] 화풍과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베네치아파] 화풍, 그리고 그 이전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르네상스] 화풍을 꼽을 수 있다.


카라바조가 [바로크]라는 새롭고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와 같은 다양한 화풍들을 비단 ‘육체의 눈’뿐만이 아니라 ‘가슴의 눈’과 ‘영혼의 눈’으로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는 그 안에서 선과 색, 사물에게 조사된 빛과 그 너머의 어둠, 붓의 터치와 물감의 질감, 구도와 비례, 표정과 움직임, 그림의 표면으로 스며든 빛과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을 자신의 두 손 위에 올려놓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탐닉하면서 만지작거릴 수 있는, 신으로부터 오직 그에게만 부여된 재능을 가졌던 천재 예술가였다.

카라바조에게는 ‘천재적’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카라바조는 ‘천재적인’ 것을 너머 ‘천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카라바조는, 다른 천재 예술가들이 그런 것처럼, 한 사람의 인간으로 현실세계에 태어났다.

천재 또한 인간이기에 천재라고 해서 탄생부터 다를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누구나처럼 카라바조에게도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인간적인 행위를 수행함으로써 그가 ‘그림이라는 가장 지적이며 창조적인 세계’로 들어설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그래서 ‘카라바조의 스승’이라고 불릴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 사람이 바로 시모네 페테르자노(Simone Peterzano, c.1535–c.1599, 또는 c.1540 (Bergamo) - c.1596 (Milan))이다.


시모네 페테르자노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주의 베르가모 출신으로 롬바르디아 주의 수도(주도)인 밀라노를 중심으로 활동한 [후기 매너리즘 화풍]의 화가(late mannerism painter)라고 예술사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 곳곳에서 찾아지는 테네브리즘 효과에서는 [바로크 화풍]의 흔적을 진하게 느낄 수 있어 [후기 매너리즘 화풍]이 [바로크 화풍]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화풍을 더듬을 수 있게 하는 [과도기적 화풍]의 화가이기도 하다.

비록 예술사에서는 시모네 페테르자노를 [바로크 화가]라고 구분 짓지는 않지만 그의 제자였으며 그의 화풍에서 영향을 받은 카라바조가 바로크 미술을 개척했다는 것만으로도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화풍이 바로크와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을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16세기 당시 밀라노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명 화가 중에 한 명이었던 그는 종종 베네토 주의 주도인 베네치아(Venezia) 출신으로도 언급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시모네 페테르자노가 젊은 시절에 그림을 익힌 것이 베네치아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카라바조가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화실에서 도제생활을 마친 후에 베네치아와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해 나간 것을 보면 스승인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화가로서의 이와 같은 배경이 카라바조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카라바조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스승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예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출신에 대한 배경을 살펴보면 그는 태생적 출신(출생지)인 [베르가모]를 이름에 붙여 ‘베르가모 출신의 시모네 페테르자노’라고 불리거나, 화가로서의 출신지인 [베네치아]를 이름에 붙인 ‘베네치아 출신의 시모네 페테르자노’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베네치아가 밀라노와 대등하리만큼이나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규모가 큰 도시였고 베르가모 또한 이탈리아 북부지역에서는 어느 정도의 면모를 갖추었던 도시였기 때문에 그 지역들이 출신지로서 이름에 붙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당시 시모네 페테르자노가 활동하던 밀라노의 화가들 중에서는 [베르가모]나 [베네치아] 출신은 여러 명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이름이 동일한 다른 화가는 없었기 때문에 시모네 페테르자노는 자신의 태생적 본명을 화가로서의 이름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무튼 카라바조가, 당시 밀라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명 화가였던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화실에서 도제 생활을 했다는 것은, 카라바조의 화가로서의 경력에 분명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무명 화가로 지내면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곤궁하게 지낸 로마에서의 초기 시절에는, 그가 밀라노의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화실> 출신이라는 것이 카라바조의 아이덴티티(identity)이자 든든한 배경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오직 ‘승자’ 단 한 사람만을 기억에 남기는 법이다. 시모네 페테르자노 또한 이탈리아 북부 예술계를 풍미하던 실력 있는 유명 화가였고, 제자 카라바조가,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천재화가 카라바조>가 될 수 있도록 그의 예술에 영향을 주었지만, 예술사(Art History)와 예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시모네 페테르자노는 자신의 이름과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카라바조의 스승>(master of Caravaggio)이란 타이틀로 더욱 잘 알려지게 되었다.


시모네 페테르자노는 카라바조라는 십 대의 어린 도제를 화가로 키우고, 그의 예술이 발현될 수 있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오직 카라바조만이 그 시대의 미술을 대표하는, 그래서 유일한 승리자가 되도록 기여한 것이 결국 그가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시모네 페테르자노 또한 바로크 미술의 형성에 적지 않은 지분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카라바조와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궁금한 것 중에 하나는 “시모네 페테르자노는 자신의 화실에서 생활하며 그림을 익히던, 십 대의 어린 도제 카라바조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는 것이다.

또한 “카라바조는 시모네 페테르자노에게 어떤 존재였을까.”하는 것으로 궁금증이 뻗어 나간다.


시모네 페테르자노는 카라바조를 단지 자신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화실을 거쳐 간 여러 도제들 중에 한 명의 화가 정도로만 여겼을까.

카라바조가 도제생활을 하면서 그렸을 습작들과 작품들을 시모네 페테르자노는 어떻게 평가했을까.

그것들을 통해 시모네 페테르자노는 제자 카라바조의 ‘천재성’을 발견했을까,

아니면 ‘그저 손재주 좋은’ 도제라고 여겼을까.


대체 어떤 이유에서 카라바조가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화실에서 그린 작품이 단 한 점도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

또한 카라바조의 십 대 시절의 그림이나 그 시기에 스승 시모네 페테르자노와 개인적으로 연관된 에피소드가 어째서 짧은 것 하나도 전해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도제생활을 마치고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돌아다니던 카라바조가 로마로 옮겨 간 후, 화가로서 크게 성공을 이룬 것에 대해 시모네 페테르자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카라바조(1571-1610)가 1571년생이고 시모네 페테르자노(c.1535–c.1599)는 1535년생이니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약 36년이다.

13살의 카라바조가 도제생활을 시작한 해에 시모네 페테르자노는 49살이었다.

또한 시모네 페테르자노가 사망한 해인 1599년에 카라바조의 나이는 28살이었다.


이 정도의 나이 차이라면 경쟁의식이나 시기심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고 하기보다는 스승으로서 그리고 제자로서 독려하고 북돋움을 주려는 관계였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화실에서 있었던 어떤 모종의 사건들로 인해 서로 고개를 돌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카라바조의 불가해한 행적을 보면 충분히 그럴만한 여지가 있어 보인다.


카라바조가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화실에서 도제생활을 한 것은 십 대 시절의 약 4년이었다.

따라서 카라바조는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화풍에서 화가로서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대하는 방식에서 인간으로서 크고 작은 감동과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카라바조와 시모네 페테르자노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화가로서만이 아니라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인격체로서,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는 관계가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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