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제너레이션 작가들

헤밍웨이의 작품 속 로스트 제너레이션과 파리는 날마다 축제 - 1/3

로스트 제너레이션 작가들

: 헤밍웨이의 작품 속 로스트 제너레이션과 파리는 날마다 축제 - 1/3


허무, 상실, 방황, 냉소, 불신, 무기력, 절제된 슬픔, 침묵 속 절망은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들이, 시대적 여건과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감정들이다.

그들은 ‘의미를 잃은 세계에서의 조용한 생존’을 스스로 그리고 타의에 의해 선택한 세대였고 이는 당시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가 되었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전후의 허무를 담담하게 절제된 문체로 묘사한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와, 재즈 시대와 전후 세대의 붕괴된 꿈을 상실된 이상과 물질적 허영을 통해 들여다본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1896–1940)를 꼽을 수 있다.


특히 F. 스콧 피츠제럴드는 그의 대표작인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아메리칸드림'의 화려함 뒤에 가려져 있는 도덕적 타락과 공허함을 예리하게 포착해 낸 작가이다.

또한 개인을 너머 시대 전체의 파편화에 주목하면서 집단적·사회적 시각에서 이 시기를 조망한 존 도스 패서스(John Dos Passos, 1896–1970)를 빼놓을 수 없다.


존 도스 패서스는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시대 전체의 구조’로 기록한 작가로서 헤밍웨이가 침묵과 절제로 개인의 상처를 묘사한 반면에 존 도스 패서스는 자본·정치·언론·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분해하는지를 문학적으로 해부하여 묘사하였다.


그는 문학을 사회 분석의 도구로 삼았기에 미국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사회적 기록자’라는 호칭으로도 불리고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피츠 제럴드, 존 도스 패서스는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는 울타리를 공유하는 작가들이다.

하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나는 이렇게 상처를 받았다.”라는 식으로 접근하고 피츠 제럴드는 “꿈이 이렇게 무너졌다.”라는 식으로 접근할 때, 존 도스 패서스는 “이 세대는 왜 이렇게 망가질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사회 전체에게 던지고 있다.


아무튼 이들 중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상징하는 작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JPG

파리의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F. 스콧 피츠제럴드 (1920s)

1920년대의 어느 날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가 함께 찍혀 있는 이 사진은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투샷 사진으로 꼽힌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26년 작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와 1929년 작인 <무기여 잘 있거라>을 통해 전쟁의 허무함과, 상처 입고 방황하는 로스트 제너레이션들의 영혼을 간결하면서도 하드보일드한 문체로 그려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상징하는 작가라고 불리는 것처럼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와 <무기여 잘 있거라>는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상징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한 것과 같이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는 용어는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고 그의 작품을 통해 구체적인 방향성과 의미를 갖게 되었다.


결국 로스트 제너레이션과 헤밍웨이를 떼어낼 수 없는 것처럼 헤밍웨이를 말하면서 파리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1921년부터 1928년까지, 1920년대의 대부분이자 자신의 이십 대 대부분을 파리를 중심으로 프랑스에서 보냈다.


1926년 작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헤밍웨이가 파리에 머물던 시기에 집필 및 출간 한 작품이고, <무기여 잘 있거라>는 헤밍웨이가 파리를 떠난 직후인 1928년경부터 집필하기 시작해서 와이오밍주 스피어의 게스트 랜치와 아칸소의 피곳(Piggott), 캔자스의 미션 힐스와 같은 미국의 여러 장소를 거쳐 1929년에 출간한 작품이다.


시기 만을 놓고 보면 <무기여 잘 있거라>는 파리와는 관련 없는 작품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행적과 문체, 작품의 성숙과정을 따라가 보면 그 속에서 파리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된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 1926)의 제목은 구약성서 <전도서>(Ecclesiastes)의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허무와 상실 속에서도 시간과 삶은 계속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로스트 제너레이션들의 정서를 상징하는 제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 1929)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제목이다.


첫 번째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제목에서 사용한 단어 ‘Arms’을 ‘무기’, 즉 전쟁, 폭력, 군사적 세계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 경우 ‘A Farewell to Arms'를 '전쟁과 같은 폭력에 대한 결별'을 선언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Arms‘을 ’팔 또는 품‘, 즉 사랑하는 이를 안는 ‘팔’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 경우 ‘A Farewell to Arms'를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즉 사랑의 상실’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무기여 잘 있거라>가 이중적 의미(중의성)를 가진 것은 헤밍웨이가 ‘전쟁과 사랑, 모두에서의 상실과 허무’를 <A Farewell to Arms>이라는 제목 안에 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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