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3월,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80년대, 대학가 길목어귀 어디쯤에선,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 있을 것 같았다. 그중에 한 곳, 경희대학교 정문 근처의 그곳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카페>에선, 낡은 엘피판의 진동에 긁혀 흐트러진 눈발이 시시때때로 가늘고 굵게, 때를 잃은 채 내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참 다행인 일은, 스타벅스와 같은 체인커피숍 하나 없던 그 좋던 시절을 대학가에서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집들은 제 각각 다른 향과 맛의 커피를 주술사의 묘약처럼 흘려내고 있었고 서로 다른 느낌의 음악이 동해바다의 밤바람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있었기에 떠돌길 좋아하는 젊은 사내놈의 발걸음을 잠시나마 쉬어가게 해 주었다.


피카소와 샤갈, 이 둘은 늘 함께 떠올려지곤 했지만 그 느낌은 호흡하는 시간과 감상에 따라 크게 좌우되고 있었다. 파리의 이미지와 잘 버무려진 피카소에 비한다면 샤갈은, 유대인이라는 태생적 배경 때문인지, 파리의 이미지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그래서 더 추상적이고 이질적인 것 같다도,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김춘수 님의 저 시를 보면서 샤갈의 그림 중에 '마을에 내리는 눈'이란 작품이 있을 거라고 여긴 적이 있다. 여겼다기보다는 분명 그럴 거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확신했었다. 그 참, 세월은 늘 현명함을 살짝 얹어주니 반갑기도, 성가시기도 한 존재다.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 분명하진 않은 것처럼 샤갈의 작품 중에는 '눈 내리는 마을'이란 제목의 작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제대로 기억나질 않는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분명 그래야만 하는 것이 그러지 않았기에, 기억나질 않는 겐지 기억에서 지워버린 것인지, 알지 못한다.


김춘수 님과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7/6 - 1985/3/28), 그리고 눈 내리는 마을은, '성문 앞 우물가의 보리수'를 지나가는 겨울 나그네처럼 겨울날이면 아침서리처럼 기억의 창에 엉켜 붙는 말간 오브제이다.


파블로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화가라 칭함을 받는 샤갈의 작품 중에 김춘수 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의 모티브가 된 작품은 <Over Vitebsk>(비테브스크 위에서)이다. 샤갈은 이 제목의 작품을 몇 가지 버전으로 남겼는데 그중에서 뉴욕 미드 맨해튼 중심부에 있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에서 소장한 작품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얀 눈이 비테프스크 마을을 덮고 있는 겨울, 어깨에는 자루를 메고 손에는 지팡이를 쥔 남자가 하늘 위에 있다. 날아간다는 것과 날고 있는 것의 뉘앙스가 다르니 하늘 위에 정지해 있다, 또는 정지해 버렸다, 그냥 그곳 하늘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것에 대한 판단과, 하늘인지 허공인지, 마을을 지나는 길이었는지 애초 마을이 최종 목적지였을지를 가리는 것은 감상하는 이에게 주어진 권리이다.


샤갈이 러시아의 비테프스크라는 마을의 한 유대인 정착촌에서 태어난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 그림을 바라보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기울어진 가로등과 비스듬히 멈추어버린 사내가 나타내는 것에 대한 얘기 또한 분분하다. 아무튼지 간에 러시아의 어느 가난한 유대인 정착촌은 샤갈의 손을 통해 신비롭고, 어쩌면 동화 속 삽화 같은 모습으로 캔버스 위에 재생되어 시간을 잊고 있다.


뉴욕의 겨울, 그 끝자락, 3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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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Franz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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