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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 Sep 28. 2023

깨어 있는 존재들의 밤

에필로그


잠에 대해선 좋아하는 색깔이나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듯 저마다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할 거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맞닿아 있는 영역이자, 그날의 컨디션을 좌우하는 각자의 중요한 시간인 만큼.


우리의 잠버릇과 수면 습관이 다양하듯,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동물은 그 종류만도 엄청나고, 존재 방식도 모두 다르다. 자연히 잠자는 모습 내지 습성 또한 제각각 차이가 크다.


그런데 <잠자는 동물들>을 연재하면서 어느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다. '대체 잔다는 것은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특히 곰벌레와 물고기의 잠에 대해 쓸 땐 ‘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잠시 죽은 듯 활동을 멈추거나 극도로 움직임을 제한한 채 휴식할 때도 ‘수면’ 상태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일까?


‘물고기의 잠’ 편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인간의 수면은 뇌파와 호흡, 심박수 등의 변화를 통해 각성 상태와 수면 상태를 구별할 수 있다. 다만 동물은 인간과 완전히 동일한 조건에서 비교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땐 ‘잔다’라는 상태를 어떻게 가정하고 접근해야 할지 보다 명확한 기준이나 공감대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잠을 자는 이유에 대해선 너무나 많은 구체적인 연구 결과들이 존재하지만(기억력과 면역력, 정신건강 및 육체적 피로 회복을 위해서 등), 어쨌거나 분명한 건 우리는 잠을 안 자고는 제대로 삶을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많은 동물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틈틈이 꼬박꼬박 자는 이유 또한 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아닐까.



얼룩말, 올빼미, 바다거북, 박쥐, 해달, 곰벌레, 기린, 물고기, 곰. 아홉 마리의 동물을 끝으로 <잠자는 동물들> 연재를 마친다. 사실 아직 더 이야기하고 싶은 동물들이 많다. 0시간만 잔다고 알려진 황소개구리, 3년이나 잘 수 있는 달팽이 등. 하지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남은 연말 내가 해야할 일들, 진짜 쓰고 싶은 글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그간 연재를 하면서 부지런히 이런저런 레퍼런스들을 참고했지만, 여전히 의문이 들었던 것은 그 모든 말들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점이었다. 논문으로 나온 연구 결과도, 권위 있는 매체에서 내보낸 아티클도 사실 나는 백퍼센트 다 믿진 않는다. 생물학자이자 <동물들처럼>의 저자 스티븐 어스태드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BBC는 동물과 인간의 장수에 관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제일 열심히 실어 나르는 매체 중 하나다.” 물론 여기선 동물의 ‘수명’에 대한 모든 연구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지만, 나는 ‘수면’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영역이라 생각한다. 수면을 측정하는 기술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대상이 인간이 아닌 동물이기에 고려되어야 하는 변수들은 너무나도 많다.



수면 자체에 대해서도, 나아가 동물에 대해서도 아직 알아가야 할 것들은 여전히 끝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연재를 마쳐도 어째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그래, 끝은 또 새로운 시작이니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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