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 테마 에세이 『깨어 있는 존재들의 밤』에서
* 아래 글은 테마 에세이 『깨어 있는 존재들의 밤』의 마지막 소챕터 ‘인간의 잠_동물 꿈을 꾸는 인간’에 수록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평소 꿈을 많이 꾸는 편이다. 동물 꿈도 자주 꾼다. 몇 년 전 맘에 드는 습작물을 하나 완성하고 잠들었던 날엔 꿈에 새하얀 비둘기가 나왔다. 방 안에 함께 있던 그 새는 곧 창밖으로 날아갔는데, 내다보니 바로 앞에 맑고 드넓은 연못이 있었다. 나는 담장을 넘듯 창문 밖으로 발 한쪽을 막 걸쳐 놓던 도중 잠에서 깨어났다.
고양이도 꿈에 종종 등장한다. 어느 날엔 꿈에서 아주 뚱뚱한 바둑 무늬 고양이를 만났다. 데굴데굴 굴러갈 정도로 통통한 ‘뚱냥이’였다. 너무 푹신해 보였던 나머지 보자마자 덥석 안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내 입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 녀석이 숨기고 있던 날카로운 발톱에 허벅지가 푹 찔렸기 때문이다.
(중략)
내가 동물 꿈을 꾸듯 동물도 사람 꿈을 꿀까. 아니, 꼭 사람 꿈이 아니더라도 꿈이라는 걸 꿀까. 꾼다면 그들은 꿈속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까.
인간은 주로 렘수면(REM) 단계에서 꿈을 꾼다. 이 단계는 몸은 자는 듯 보여도 뇌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상태다. 꿈을 꿀 때 우리 눈동자는 좌우로 빨리 움직인다. 호흡과 심박수가 증가하고, 주기적으로 신체에 경련이 일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그간 동물에게도 렘수면 단계와 비슷한 상태를 수없이 발견해왔다. 고양이나 말, 생쥐 등이 수면 도중 두 눈을 빠르게 움직였다. 잠자던 갑오징어는 주기적으로 팔과 눈동자를 경련하듯 움직였으며, (안전한 환경에 있었음에도) 피부색을 극적으로 바꾸었다. 문어도 자면서 온몸을 여러 차례 오색찬란한 빛깔로 물들였다. 적을 만나 몸을 위장하거나 먹이를 사냥할 때처럼 그렇게 몸 색깔을 바꾸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말 꿈을 꾸고 있었을까. 싸우거나 사냥하는 꿈이라도 꿨던 걸까. 사실 동물들이 직접 말해주지 않는 한 진실은 알 길이 없다. 렘수면 단계처럼 보이는 그들만의 또 다른 수면 단계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꿈을 꾼 게 아니라 잠시 깨어나 뭔가를 회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아무의미 없이 발생한 현상이었을지도 모르고. 혹은, 혹은.......
수많은 가설을 던져볼 수 있겠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내심 믿고 싶었다. 그러니까 ‘동물도 사람처럼 꿈을 꾼다’고. 내가 꿈속에서 동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면, 그들도 꿈속에서 날 만날 수 있길 바랐다. 동물들과도 꿈의 세계를 공유하고 싶었다.
고맙게도 이런 막연한 내 바람에 힘을 실어주는 증거들이 보였다. 데이비드 페냐구즈만은 그의 책 『우리가 동물의 꿈을 볼 수 있다면』(2024)에서 수많은 동물 연구 결과와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동물도 꿈을 꾼다’고 조목조목 주장한다. 특히 저자는 동물의 꿈을 논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전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동물도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고, 주체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줄 알며,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생명체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꿈은 감정과 기억, 상상력의 산물이다. 인간이 꿈을 꿀 때 일어나는 현상을 단순히 ‘수면 역학’을 넘어 ‘꿈’으로서 재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 꿈을 의식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동물도 꿈을 꾼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동물 또한 그런 존재임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들이 세계를 감각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인간과 완전히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다만 이를 인정하려면 우리가 얼마나 모순적인 존재인지 또한 직시해야 한다. 동물도 감정이 있으며 고통과 통증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인간은 여전히 수많은 동물을 필요 이상으로 살육한다. 또한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려동물로 사유화한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채식주의자로 거듭나고자 했던 나의 도전은 7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그때도 생선까지는 먹는 페스코테리언이었다.) 나는 실내에서 알록달록한 무당벌레를 보게 되면 너그럽게 창밖으로 내보내주면서, 발이 사방군데 달린 돈벌레를 마주하면 기겁하며 눌러 죽일 생각부터 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동물을 향한 이중적인 시선은 내 안에도 버젓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동물을 실험하는 많은 연구 시설과 수의학 관련 기관에선 매년 동물위령제를 지낸다고 한다. 동물에게 가한 고통을 참회하며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로터 복수당하지 않도록 빌기 위해서다. 가만 보니 내가 꿈속에서 고양이 발톱에 찔리고 개에게 목을 물리고 했던 이유가 혹시...... 그들이 동물을 대표해 인간인 내게 복수라도 한 것일까. 글쎄,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도 위령제를 지내듯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 같다. 나아가 어떻게 하면 동물들과 함께 행복하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나가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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