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 테마 에세이 『깨어 있는 존재들의 밤』에서
* 아래 글은 테마 에세이 『깨어 있는 존재들의 밤』의 소챕터 '펭귄의 잠' 편에 수록된 내용 일부입니다.
남극에 사는 펭귄들은 온종일 새끼들을 먹이고 보호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들은 펭귄 알과 새끼를 노리는 남극도둑갈매기, 남방큰풀마갈매기 같은 천적을 경계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지난해(2023년) 극지연구소 이원영 박사 연구팀이 프랑스 리옹 신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진과 <사이언스>에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바로 펭귄들의 수면 패턴에 대한 연구 결과였다. 연구팀은 남극 킹조지섬에 사는 턱끈펭귄 14마리에게 수면파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장착했다. 그러곤 11일간 뇌파와 근육 활동, 신체 움직임 등을 측정하며 수면 패턴을 분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턱끈펭귄이 4초씩 1만 회에 걸쳐 쪽잠을 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4초를 세보았다. 설령 너무 피곤해 잠이 쏟아진다 해도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주변 소음이 뭉개지기까지 4초는 터무니없이 짧았다. 하지만 연구 결과 턱끈펭귄은 4초 동안에도 수면 뇌파가 측정되었다. 심지어 바다에서 먹이를 찾는 동안에도 찰나의 쪽잠을 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식으로 4초씩 잔 시간들을 모두 합하면 무려 11시간이나 됐다.
아무리 하루에 11시간을 잔다 해도 선 채로 4초씩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제대로 잔 것 같지도 않을 텐데....... 허나 펭귄은 우리와 다른 수면 세계를 살고 있었다. 그들은 찰나의 쪽잠을 자면서도 ‘서파수면(slow-wave sleep)’, 즉 깊은 수면을 하고 있었다.
(중략)
그나저나 펭귄들의 자식 사랑은 그야말로 감동스럽다. 턱끈펭귄이 4초씩 쪽잠을 자면서 새끼들을 보호한다면 황제펭귄은 새끼를 위해 장시간 단식을 불사한다. 황제펭귄 암컷은 알을 낳기까지 눈보라 속에서 평균 45일간 공복 상태로 버티며, 알을 낳은 뒤에야 비로소 먹이를 찾아 바다로 나간다. 그 사이 암컷과 교대한 수컷 펭귄은 발 위 알주머니에 알을 소중히 품고 아내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남극의 폭풍우를 견디며, 두 달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문득 루리 작가의 아름다운 동화 『긴긴밤』(2021)에 등장하는 펭귄 부부 치쿠와 윔보가 떠오른다. 그들의 자식 사랑도 눈물겨웠다. 치쿠와 윔보는 파라다이스 동물원의 버려진 펭귄 알을 자기 새끼처럼 돌보았다. 전쟁으로 남편 윔보가 죽자 치쿠는 양동이에 알을 넣고 손잡이를 입에 문 채 동물원을 탈출한다. 알에서 태어날 새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코뿔소 노든과 함께 바다를 향해 하염없이 나아간다.
하나의 생명체를 온전히 키워내는 일은 실로 많은 노력과 사랑이 필요하다. 때론 너무도 많은 희생이 뒤따른다. 나도 언젠가 엄마가 될지 모르는데,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아이를 키워내기엔 여전히 삶의 많은 부분에서 서툰 만큼 걱정도 앞선다. (게다가 이 얼마나 험난한 세상인가!)
그럼에도 지켜내야 할 생명이 있다는 건 두려우면서 동시에 한없이 소중한 일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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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존재들의 밤』과 함께(!) 모두 즐거운 설 연휴 맞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