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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테마 번역서 『꿈에서 본 이야기』 번외 편

by 연지


얼마 전, 지하철 역사 내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중년 아주머니가 거울을 보며 정신 없이 화장을 고치다 말고 손을 씻고 있던 내게 대뜸 물었다.


“혹시 핸드폰에 꿈 해몽 앱 같은 거 깔려 있어요?”


아주머니의 쪽진 머리와 새빨간 루즈 때문이었는지 그 질문은 왠지 이상하게 들렸다. 갑자기 웬 꿈 타령이람. 그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하지만 꿈 이야기라면 나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으므로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무엇보다 그날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테마 번역서 『꿈에서 본 이야기』를 출간한 날이기도 했기에. 우연 치고 재미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대꾸했다.


“아뇨, 앱은 없는데 보통 해몽은 검색해도 대충 나와요. 왜 그러시는데요?”


“아니 내가 오늘 정말 이상한 꿈을 꿨거든요.”


그러더니 빨간 루즈 아주머니는 갑자기 자기 꿈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오늘 꿈에서 빨간 봉투가 나왔어요. 그 봉투엔 20만원이 들어 있었는데, 내가 그걸 어떤 사람한테 건네줬지요.”


나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핸드폰으로 얼른 빨간 봉투 꿈 해몽을 찾아보았다. 대부분의 해몽이 그렇듯이 이 꿈도 좋고 나쁜 풀이가 뒤섞여 있었다. 다행히 대체로 좋은 꿈풀이들이 보였다.


“행운의 소식이 찾아올 거란 뜻이래요. 재물운도 뒤따르고요. 좋은 일이 있으시려나 봐요.”


내 말에 아주머니는 방긋 웃으며 소리쳤다.


“어머, 어쩜 좋아! 나 그렇지 않아도 지금 되게 높으신 분 만나러 가거든요. 지자체 단체장인데, 그분이 나한테 오늘 일거리를 줄지도 모르거든!”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는 단정한 투피스 차림에 구두를 신고 있었다. 면접 복장처럼 차려 입고 나오신 걸 보니 그분에겐 정말 중요한 날인 듯싶었다.


그녀는 내게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나야 뭐, 꿈 해몽을 검색해 들려주기만 한 것뿐인데. 그래도 기뻐하시는 걸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거울을 보며 마지막으로 매무새를 점검하고 있는 그녀에게 인사하고 나오며 속으로 외쳤다. ‘행운을 빌어요 아주머니!’




같은 날, 아주머니처럼 길몽을 꾼 건 아니지만 나도 꿈을 꾸긴 했다.


오래전 함께 일했던 동료 K가 꿈에 나왔다. 나와 아주 친했던 동료였지만, 내가 퇴사를 한 뒤 우리는 접점이 조금씩 사라지고 각자의 삶이 바빠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교류가 끊긴 상태였다.


꿈에서 K는 내게 자기 아들을 소개했고,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눴다. 무슨 이야길 나누었는지는 깨어나자마자 잊어버렸다. 어쨌든 그날 나는 한참 고민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 톡이라도 보내볼까.’


그러고 보니 그간 내게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왔던 친구 혹은 지인들 중 이렇게 말해오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지연아, 너가 꿈에서 나왔어. 그래서 연락했어.”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무척 반가웠다. 그건 그들의 기억 속 어딘가에 내가 있었기에 꿈에 나왔다는 말일 테니.


K도 내 오랜 기억 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날 나는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잘 지내고 있겠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하면서.


건강히 잘 있었음 좋겠다.




얼마 전엔 한동안 나를 괴롭게 했던 이에게 그동안 쌓인 것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붓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화를 냈는데, 잠에서 깬 뒤에도 너무나 통쾌하고 시원했다.


사실 꿈이어서 다행이었다. 현실에선 실현하기 힘든 일이었기에. 현실에서 내가 그토록 화를 냈다면, 나는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그건 내가 원하는 해결 방식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번쯤은 꿈에서처럼 터뜨리고 싶었던 것 같기도. 아마 그게 내 진심이었을 거다.)




그밖에 내가 꾸는 꿈들은 대체로 너무나 엉뚱하고, 엉망진창이고, 때론 기발하고, 때론 감동스럽기까지 하며, 가끔은 일상과 다를 바 없기도 하다. 어쨌거나 꿈을 들여다보는 일은 내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꿈속의 장면들은 늘, 내게 어떤 말을 걸어온다.


『꿈에서 본 이야기』​에서 못다 한 꿈 이야기는 이 밖에도 많을 것 같다.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다. 현실에서의 삶이 끝날 때까지, 꿈속에서의 삶도 계속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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