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k 03. 오해

by 연지


찰칵, 하는 소리에 선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 앞좌석에 앉은 사람이 창밖을 찍고 있었다. 출발할 땐 한낮이었는데 밖은 어느덧 깜깜했다. 지금은 비행기 날개 불빛밖에 안 보이건만 대체 뭘 찍고 있는 거지…… 뉴욕까지는 아직 5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자볼까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잠잠했던 아기 울음소리가 또다시 귓청을 찔러왔기에.


“근데 자정이 다 되어가는 한밤중에 고궁 담벼락 앞에서 트럼펫을 불었다니, 민원이 들어올 일 아닌가요?”

상담 시간 마일스와 처음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상담 선생님은 내게 따져 물었었다. 당시 내가 받고 있던 상담은 심리상담사 인턴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실습 시간을 채우기 위해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덕분에 상담비는 저렴했으나 배정되는 상담사는 복불복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당시 쿨재즈 테마 단행본 마감을 진행하면서 마일스 데이비스 이야기를 너무 많이 접한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무언가에 빠져 있으면 헛것이 보이기도 하거든요.”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고 잠금을 해제했다. 그러곤 마일스를 처음 본 날 몰래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는 분명, 돌담길을 배경으로 의젓하게 트럼펫을 불고 있는 마일스가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미심쩍어 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한동안 사진을 이리 저리 확대해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요즘 AI가 참 많이 발전했지요? 아참, 길영 씨 소설 습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했죠? 허구의 이야기를 막 그럴 듯하게 지어내는 사람들 보면 저는 참 신기해요…….”

나는 그날로 상담을 관두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마일스를 처음 만났던 날, 나는 아주 잠깐 착각을 했었다.

사진을 몰래 찍고 난 직후, 어느새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있었다.

“<’Round Midnight> 연주, 정말 좋았어요.”

그는 트럼펫을 한 손에 든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검은 피부 때문인지 그의 흰자가 유난히 빛나 보였다. 매끈한 검은 피부 아래 살짝 튀어나온 광대, 크고 부리부리한 눈, 약간의 인상을 쓴 미간, 굳게 다문 입술……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가 한국말을 못 알아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말했다. “It was great performance…”

“저 한국말 할 줄 알아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그는 두툼한 입술을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그러곤 수줍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 연주를 좋게 들어주다니 고맙습니다. 반가워요, 마일스입니다.”

‘마일스? 설마, 그 마일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마일스 데이비스가 살아 돌아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때마침 얼마 전 『재즈의 발자취』 부록면에 들어갈 마일스 데이비스 연보를 정리했던 참이었다. 나는 똑똑히 기억했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엄마의 기일과 같은 날인 1991년 9월 28일에 죽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아주 잠시, 나는 뜬금 없는 상상에 빠져 들고 있었다. 언젠가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60대 못지않은 체력을 자랑하며 공원 철봉에서 턱걸이하는 유튜브 영상을 봤던 게 기억났다. 죽은 줄 알았던 슈가맨 로드리게스가 잘 살아 있었다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던 것도 떠올랐다.

그때 마일스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듯 내게 말했다.

“당신이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었다면, 유감스럽지만 나는 아닙니다. 마일스 밀러. 이게 내 풀 네임이에요.”

상담 선생님한테 여기까지 이야기해줬다면 그녀는 내 말을 믿었을까. 아니, 더 의심했을지도 모르지. 혹시 꿈을 꾼 건 아니냐고 물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 하는 게 아니다. 마일스의 존재는 이미 서촌에서 유명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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