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k 04. 마일스 밀러

by 연지

마일스에 대해선 무수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어렸을 적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입양온 흑인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바닷마을에 가면 그를 닮은 흑인 노동자들이 가끔 보일 때가 있다며 그가 원양어선 노동자로 한국에 들어온 불법체류자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가 계속 눌러앉게 된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혹은 그의 말끔한 차림새로 미루어 보아 그가 외교관 집안 자녀로 한국에 오게 되었다가 한국으로 망명한 게 아니냐는 말도 돌았다.

소문은 이처럼 무성했지만 그의 정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도,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와 대화를 해봤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그는 용기 있게 말을 건네오는 사람에게조차 별다른 대꾸도 안 해줬으니까. 결국엔 다들 조금은 먼 발치에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카페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커피를 주문하고, 경복궁 담벼락 어귀에서 담배를 피며 한숨을 쉬고, 말쑥한 수트 차림으로 그의 피부만큼 새까만 케이스를 들고 어딘가로 향하는 그의 모습을.

게다가 그는 동네 구석구석을 매일같이 꼼꼼히 살피며 돌아다녔다. 가끔은 동네 주민을 붙들고 한 여인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녀를 아는지 묻기도 했다. 그런 수상한 행동 때문에 그는 경찰에 신고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는 무해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한국으로 입양 온 흑인도, 원양어선을 타는 노동자도, 교환학생을 왔다가 눌러앉은 외국인도, 외교관 자녀도 아니었다. 위협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그저 프랑스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영국에서 번듯한 직장에 다니다 일찍이 은퇴한 50대 남성이었다. 한국에 온 지는 그 해가 3년째였다. 그가 들고 다녔던 검은 케이스에는 트럼펫이 들어 있었는데, 이는 한국에 온 뒤 새롭게 시작한 악기였다. 과거에는 트럼펫이 아닌 색소폰을 불었다고 했다.

아마 그런 사실들은 나만 알고 있었을 거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누군가 말을 건네도 답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알아보는 법일까. 혹은, 그가 연습하던 곡명을 내가 알아봐줘서였을까. 마일스를 처음 만난 이후, 나는 그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러면서 그가 왜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도 곧 알게 되었다.

“한국에 온 건 미연 씨 때문이에요. 그녀는 서촌에 산다고 했어요.”

그의 말에 나는 미연 씨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은 일순 진지해졌다. 잠시 후 마일스는 어렵게 다시 입을 떼며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게 된 사람.”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게 된 사람’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전 03화# Track 03. 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