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k 06. 닮고 싶은 사람

by 연지


마일스는 일상에서 들리는 사소한 소리에서도 음정을 찾아내곤 했다. 어느 날은 내가 약 먹을 시간에 맞춰 두었던 알람 소리가 울리자 그는 오른손 검지를 트럼펫 1번 벨브 위에 가져다두며 외쳤다. “F 메이저 세븐.” 그러고 보니 내가 발이 삐끗해 넘어졌을 때도 그랬다. “G 플랫 마이너…… 아, 내 정신 좀 봐. 괜찮아 길영?”

이 모든 건 그가 마일스 데이비스를 닮기 위해 일상 속에서 만든 습관이었다. 언젠가 마일스는 내게 말해주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삐걱대며 울리는 문소리에서까지 음정을 찾아냈대. 친구와 바에서 동전을 던지고는 그때 들린 소리가 어떤 음정이었는지 맞추면서 놀고.” 그러면서 그는 그 옛날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랬듯이 연습 중이던 곡의 코드 음정이나 악절을 입으로 흥얼거리곤 했다.

나도 재즈 단행본 편집을 하면서 익히 알고 있었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아주 지독한 연습벌레였으며, 밤낮으로 자신을 부단히도 갈고 닦은 아티스트였다는 것을.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뮤지션이었을지라도, 그 또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완벽할 순 없는 법.

“왜, 마일스 데이비스처럼 마약도 해보지 그래?”

하루는 장난 삼아 이렇게 놀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일스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그래, 그도 마약은 피할 수 없었지. 찰리 파커나 디지 길레스피, 델레니어스 몽크 등 너무도 많은 뮤지션들이 아주 심각한 마약쟁이였잖아. 그래도 젊은 날의 마일스 데이비스는 다른 뮤지션들이 술과 여자로 흥청망청할 때도 연습에 매달리는 사람이었어.”

그는 미연 씨가 왜 그 사람 팬이었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도 그를 알아갈수록 감탄하곤 하니까. 자기만의 소리를 찾기 위해 평생을 애썼던 그 열정에 말야. 그는 한평생 음악 속에서 계속 다시 태어나는 사람이었어. 비밥에서 쿨재즈, 모던 재즈, 재즈록까지…… 끊임없이 변주하며 나아갔잖아. 무엇보다도 나는 그가 화려하게 재기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어.”

그러더니 마일스는 바닥에 잠시 내려두었던 트럼펫을 다시 손에 쥐면서 말했다.

“나도 다시 태어나고 싶어. 내 삶도, 내 사랑도 완전히 다시 시작하고 싶어. 미연 씨와 다시 시작하고 싶어.”



뉴욕에서 출발하기 전날 밤, 나는 마일스 데이비스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고 왔다. 특히 다음의 두 장면을 보기 위해.


# Scene 1.

마일스 데이비스가 뉴욕 버드랜드 재즈 클럽 앞에서 백인 경찰에게 구타당했던 사건을 회상하는 장면.

《Kind of Blue》 앨범을 발표한 지 얼마 안 된 1959년 8월 어느 한여름 밤, 버드랜드에서 그의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공연 쉬는 시간 그는 백인 여자친구를 대기 중이던 택시가 있는 곳까지 바래다준 뒤 버드랜드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순찰 중이던 경찰관 한 명이 다가와 그에게 인도를 가로막지 말라며 시비를 걸더니 대뜸 신분증을 요구한다. 그는 험악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경찰에게 나는 버드랜드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내 이름이 버젓이 쓰인 저 클럽 간판이 보이지 않냐고 따진다.

하지만 슬프게도, 흑인에 대한 차별은 당대 최고의 뮤지션도 피해갈 수 없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백인 경관의 몽둥이에 머리를 가격당한다. 그가 입고 있던 카키색 정장 위로 피가 흘러내린다. 당시 상황을 앞다투어 1면에 보도했던 기사들과 사진 자료들이 화면 속에서 지나간다. 곧이어 마일스 데이비스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깔린다.

“그 거지 같은 일이 내 모든 삶, 내 모든 태도를 모조리 바꿔놓고 말았어요.”

# Scene 2.

다른 한 장면 역시 마일스의 삶이 이전과는 완전히 뒤바뀐 순간이었다.

커다란 성공 이후 마일스는 한동안 술과 마약, 교통사고, 우울증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린다. 버드랜드에서의 사고도 충격이 컸지만, 그와 동시에 뮤지션으로서 정점을 찍은 이후 찾아온 공허감도 상당했다.

특히 그 시기 마일스의 밴드 멤버들은 대부분 떠나거나 다른 프로젝트로 옮겨가고 있었다. 기회만 되면 마일스 밴드를 그만 두려 했던 존 콜트레인 또한 1960년 유럽 투어가 끝난 후 마일스를 떠난다. 그 뒤로 마일스는 색소폰 사이드맨을 여러 번 교체했지만, 콜트레인을 대체할 만한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마일스의 밴드 사운드는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그의 몸과 마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럴수록 그는 술과 마약에 더욱 빠져갔다. 잡혀 있던 공연들은 자주 취소되기 일쑤였다.

그런 그에게 대중과 언론은 한없이 냉정할 뿐이었다. 그들은 마일스에게 열광했던 지난날은 모조리 잊은 듯 이렇게 단언한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더 이상 재기할 수 없을 겁니다. 그의 시대는 이제 끝났어요.”

하지만 그는 결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1965년 11월, 마일스 데이비스는 6년간의 슬럼프를 탈출하고 마침내 대중 앞에 나타난다. 이날을 위해 새로 마련한 신형 페라리를 끌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두 번째 위대한 퀸텟’으로 불리는 젊은 재즈 뮤지션들—허비 행콕, 토니 윌리엄스, 론 카터, 웨인 쇼터—과 함께 무대 위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새로운 전성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화면은 마일스의 새로운 퀸텟이 1965년 시카고 플러그드 니켈 클럽에서 했던 전설적인 라이브 공연 영상으로 넘어간다. 곧이어 당대 그와 함께 활동했던 뮤지션들의 인터뷰 영상이 이어진다. 그중 한 명은 그때를 회상하며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정말 놀라웠어요.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정말이지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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