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마일스도 마침내 화려한 재기에 성공한 걸까.
숙소에 체크인하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다. 버드랜드 공연까지는 아직 5시간이 남아 있었다. 핸드폰을 열고 예약 내역을 다시 확인했다. 오늘의 퀸텟 공연 팀 소개 란에 마일스 밀러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그새 예명을 바꾸기라도 한 걸까.
마일스 공연이 아니더라도 일단 가볼 참이었다. 가서 그가 공연하는 날을 확인하고 그때 또 가 보면 될 테지. 내가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마일스의 공연이 잡혀 있지 않다면 클럽에 사정이라도 해서 그의 연락처를 따낼 참이었다.
그러고 보니 8년 전에도 나는 그의 주변을 서성였다.
러닝을 나갈 때마다 그가 보였던 건 아니었다. 그는 등장할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다. 그가 보이지 않을 때면 나는 경복궁 돌담길을 한두 바퀴씩 더 돌면서 두리번거리곤 했다. 그러다 보면 운이 좋게도 마일스와 마주칠 수 있었다.
그해 우리는 여름을 지나 가을부터 겨울까지, 약속이라도 한 듯 반년간 꾸준히 만났다. 우리의 만남은 늘 경복궁 돌담길이었고, 시간은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그는 나올 때마다 트럼펫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처럼 직접 연주는 하지 않았다. 그는 이어폰으로 연습곡을 들으며 트럼펫 위로 손가락만 움직였고, 덕분에 시끄럽다는 민원 따윈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마일스가 좋았다. P처럼 이성으로서 좋았다기보다, 사람으로서 좋았다. 그와 있으면 편안했다.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상담 선생님처럼 나를 함부로 분석하거나 판단하지도, 오해하지도 않았다. 나의 결핍을 맘대로 해석하려 들지 않았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 우리가 닮고 싶은 것, 우리가 되고 싶은 것, 우리가 되찾고 싶은 것,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열 살 차이를 극복했던 우정이 가능했던 건 아마도 우리에게 비슷한 구석이 많았기 때문일 거다. 말하자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둘 다 친구가 별로 없는 지독히도 외로운 존재들이었고, 이해받는 것에 그 누구보다도 집착적인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어떻게든 되찾고 싶은 상대가 있었다.
그와 헤어질 무렵이면 우리의 대화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미연 씨와 P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럴 때면 마일스는 마치 후렴구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다.
“길영,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 거야.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사랑을 되찾을 거야. 내 말을 믿어봐.”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실은 그가 사랑을 되찾기 위해 시도하는 방법들이 다소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서촌에 산다는 미연 씨는 왜 매일같이 동네를 샅샅이 뒤지며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다른 곳으로 가보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 건 아닐까. 게다가 나는 P의 주소를 알고 있었지만 그의 집 앞으로 무작정 찾아가진 않았다. 그를 너무도 되찾고 싶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를 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일스는 미연 씨를 잊을 생각 따윈 전혀 없어 보였다. 특히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부단히도 애쓰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미연 씨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는 누구보다도 진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