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k 11. 진실

by 연지


“Thank you for coming to our show. Please enjoy!”

퀸텟의 리더로 보이는 피아니스트의 인사와 함께 버드랜드 공연이 시작되었다.

트럼펫을 들고 있는 사람은 마일스를 조금도 닮지 않은 백인 트럼페터였다. 오늘은 마일스 공연 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할 수 없지 뭐, 나가기 전 마일스가 있는 팀 공연은 무슨 요일에 하는지 물어봐야지…….

진토닉을 한 잔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클럽 안은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관광객들이 단체로 왔는지 다들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는 관객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8년 전 서촌 재즈 바에서는 내가 유일한 관객이었다. 하지만 마일스의 연주가 거의 끝나갈 무렵, 손님이 또 한 명 들어왔다.

나는 마지막까지 무대에 온 정신을 집중하느라 누가 들어온 줄도 몰랐다. 다만 마일스의 트럼펫 선율이 갑자기 불안정해지는 걸 보고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마일스는 무언가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가까스로 연주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바의 한쪽 끝에 긴 생머리 여성이 홀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설마, 미연 씨?’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마일스의 연습실 벽에 붙어 있던 미연 씨 사진에서 본 얼굴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자 마일스는 곧장 무대에서 내려와 여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둘 사이 무슨 얘기가 오가는진 알 수 없었다. 바 안의 스피커에서 다시 큰 소리로 음악이 흘러나왔고, 나는 그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기에. 분위기로 봐서 여자가 미연 씨는 아닌 듯했다. 마일스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고, 여자 쪽도 마일스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으므로.

그런데 곧 마일스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온몸이 마비된 사람처럼 한동안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여자는 그새 울기라도 했는지 손으로 눈가를 훔쳐내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후, 마일스는 내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그대로 뛰쳐나갔다.

그날 나는 마일스를 뒤쫓는 대신 여자를 붙잡았다. 마일스는 곧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믿었으니까. 그날 이후 그를 8년 동안이나 못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미연 씨의 쌍둥이 언니였던 그녀는 오랜만에 서촌 할머니 댁에 왔다가 홀로 밤 산책을 나왔다고 했다.

“오늘이 미연이 3주기 날이거든요. 미연이가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 제부랑 재즈 바에 자주 가곤 했던 게 생각나서…… 걷다가 재즈 바 간판을 보니 왠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네요.”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마일스에게 당장 달려가고 싶었다. 얼른 가서 아무 말 없이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솔직히 나는 미연 씨의 불치병과 죽음이 안타까웠다기보다 마일스가 희망을 품고 소중히 지켜온 지난 시간들이 속상했다. 내 친구 마일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너무 열심히 살았던 것이다…….

미연 씨 언니와 헤어지기 직전 나는 따져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 동생분은 왜 그렇게 마일스 데이비스를 좋아했던 거냐고, 대체 왜, 왜.

“마일스 데이비스요? 아, 그냥 미연이가 좋아하던 여러 재즈 뮤지션 중 하나였는데요. 미연이는 언제부턴가는 존 콜트레인 앨범만 계속 들었어요. 자긴 트럼펫보다 이젠 색소폰 소리가 좋다고 하면서…….”

이전 10화# Track 10. 다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