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k 12. 8년 만의 재회

by 연지


버드랜드 무대 위에서 색소포니스트의 긴 솔로가 시작되었다.

객석에서 박수와 환호 소리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흥이 나질 않았다. 색소폰 연주를 들을 때마다 마일스가 떠올라 속이 탈 뿐이었다. 바보 같은 마일스…… 그도 트럼펫으로 안 바꾸고 저 친구처럼 색소폰을 계속 불었어도 됐을 텐데.

술이나 한 잔 더 마실까 싶었다. 웨이터를 부르려고 손을 막 드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톡톡 치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게다가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부르는 거지…….

고개를 돌리자마자, 나는 공연 중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고 말았다.

“마일스!”


버드랜드 공연은 어느덧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이제 무대 위가 아닌 내 옆 자리에 잠시 앉은 마일스를 향해 있었다. 테이블 촛불 위로 비치는 그의 얼굴엔 어느새 주름이 짙었다. 그래도 눈빛만큼은 예전처럼 맑고 강렬했다. 다만 복장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젊은 날의 마일스 데이비스가 즐겨 입었던 댄디한 착장과는 달리, 지금은 하얀색 와이셔츠에 깔끔한 세미 정장 바지 차림이었다. 손에는 트럼펫 대신 버드랜드 마스코트가 프린트된 메뉴판이 들려 있었다. 나를 맨처음 예약석으로 안내해주었던 웨이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을 뿐, 아무도 먼저 입을 떼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무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때마침 어색한 침묵을 깨고 마일스가 자리를 뜨면서 말했다.

“난 일하러 가봐야겠다. 너 좋아하는 와인 한 잔 서비스로 갔다 줄게.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내가 버드랜드 문 닫기 직전 15분 동안 연습 시간을 허락받아서 요즘 이용 중이거든? 그러니까 이 공연 끝나면 바로 가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줘.”




클럽 안을 가득 채웠던 관객들은 어느새 다 떠나고 없었다. 이제 내 앞엔 텅 빈 버드랜드 무대와 마일스뿐이었다.

뒷정리를 끝내고 돌아온 마일스는 언제 챙겨왔는지 트럼펫을 들고 있었다. 서촌에서 그가 들고 다녔던 황색 트럼펫이 아닌, 은빛으로 빛나는 새 트럼펫이었다. 대체 8년 사이 마일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마일스는 그런 나를 지나쳐 그대로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러곤 마이크를 붙잡고 말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래도 축하 공연은 해줘야지.”

곧이어, 마일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왠지 모르게 감격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서촌 재즈 바 공연 이후 8년 만에 보는 마일스의 무대였다. 하지만 그때의 마일스와 지금의 마일스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복장뿐 아니라 그의 연주 스타일도. 그의 트럼펫 음색은 섬세하고 서정적이었던 예전과는 달리 훨씬 발랄한 느낌이었다. 그가 연주하고 있는 곡도 처음 듣는 곡이었다. 마이너 곡조가 이어지면서도 결코 슬프지 않은, 경쾌한 삼바 리듬이 메인이 되는 곡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나는 박수와 함께 앵콜을 외쳤다. 마일스는 쑥스러웠는지 괜히 크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만든 곡이야. 어때? 아참, 곡 감상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길영 너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냥, 글 쓰고 지내고 있어요.”

지금 연재를 마무리해가고 있는 소설은 사실 재즈에 대한 글이었다. 재즈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나는 형식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있었다. 말하자면 프리 재즈 스타일로. 아주 난해한 키치 같은 장편 소설이었는데, 솔직히 독자들 반응은 영 별로였다.

이런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일스는 늘 그랬듯이 나를 전적으로 응원해주었다.

“결국 작가가 되었구나. 네가 원하는 대로 될 줄 알았어. 분명 난 믿었지.”

“근데 인기는 없어요. 우리가 그렇지 뭐.“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마일스와 마주보며 이토록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버드랜드 문을 닫고 떠나기 전, 클럽 앞에서 오랜만에 함께 담배를 피웠다. 버드랜드 간판이 보이는 배경으로 같이 셀카도 찍었다. 그러곤 브로드웨이의 밤거리를 정처없이 걸으며 밤새 밀린 이야기를 했다. 경복궁 돌담길을 수도 없이 돌면서 대화했던 그때처럼, 우리의 평범한 일상, 우리의 일과 사랑, 우리가 바라고 원하고 되고 싶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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