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k 13. 사랑에 대하여

by 연지


집을 나서자마자 부지런히 속도를 냈다. 밤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뉴욕에서 돌아오니 어느덧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뛰자 13분 만에 건춘문 현판이 보였다. 고개를 드니 경복궁 돌담 너머로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었다. 가만히 달을 보고 있는데 오랜만에 듣고 싶은 곡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에어팟을 얼른 귀에 꽂고 〈’Round Midnight〉을 재생했다. 곧이어 마일스의 끈적하고 몽롱한 트럼펫 선율이 귀를 타고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달리기를 멈추고 천천히 걸었다. 그래, 이 곡은 러닝보다 산책에 어울리는 곡이지.

오랜만의 밤 산책이었다.

뉴욕에서 귀국한 뒤 나는 연재 소설을 어떻게든 마무리지었다. 결과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낙담하지 않기로 했다. 오랜 시간 묵혀두었던 원고를 완전히 다시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일스의 이야기였다.

마일스와 뉴욕에서 헤어지기 직전 고민 끝에 물었었다. 마일스 네 이야기를 소설로 써도 괜찮겠냐고. 다행히 마일스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대신 미연 씨 실명만 바꿔달라고, 그밖에 민감한 부분들도 알아서 잘 각색해달라고 하면서.

“고마워요.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왜 하필 버드랜드로 온 거예요?”

나는 마일스에게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면 소설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고맙게도 마일스는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했는지 간파한 듯했다.

“길영, 너도 알고 있었지? 마일스 데이비스가 봉변을 당했던 장소는 브로드웨이 52번가에 있던 버드랜드였다는 거. 지금 있는 버드랜드는 44번가에 재개장한 클럽이고. 어쨌거나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음……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마일스 데이비스를 추모하면서, 미연 씨를 떠나보내면서 이곳에서 좋은 기억을 새롭게 쌓고 싶었던 것 같아.”

그러면서 마일스는 말했다. 이곳에서 자신의 삶은 분명 바뀌었다고. 모든 걸 다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삶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운명처럼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다고.

“무엇보다도 나는 이곳에서 래인을 만났어. 래인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줘. 내게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지. 물론 미연 씨도 내게 뭔가를 바랬던 건 아니었어. 그저 마일스 데이비스의 팬이었을 뿐, 나한테 그처럼 되어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바보 같으니, 미연 씨는 마일스 데이비스 팬도 아니었건만! 어쨌거나 마일스는 그날 내게 거듭 당부했다. 말했듯이 자기 이야기를 소설로 써도 좋다고, 근데 조건이 하나 있다고. ‘모두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그런 아름다운 결말이 아니어도 좋으니, 아주 그로테스크하고 이상한 소설이어도 좋으니 내가 쓰고 싶은 바를 써나갔으면 좋겠다고. 사랑받기 위해 쓰지 말고, 네가 쓰고 싶은 걸 썼을 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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