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k 14. 라운드 미드나잇

by 연지

고백하건대 마일스에게 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다. 나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게 소설을 쓰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은 바로 P였다는 것을, 나는 마일스에게 단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마일스가 미연 씨를 생각하며 부지런히 마일스 데이비스를 파고들 때, 나는 내가 소설가로 성공하면 P가 나를 다르게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고개를 드니 어느덧 저 멀리 광화문 현판과 함께 기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해태 돌상이 보였다.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자정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양손으로 받쳐 든 은빛 물체가 그의 컴컴한 피부와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나는 너무 놀라 그만 자리에 멈춰 섰다.

‘설마, 마일스?’

그럴 리가 없었다. 마일스는 지금 래인과 뉴욕서 행복한 신혼 생활을 꾸려나가며, 일주일에 3번씩 버드랜드에서 일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참, 흑인들을 보면 다 마일스라고 착각하기에 이른 것인가. 서촌은 관광객이 많은 곳이었다. 게다가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서울 한복판에서 흑인 주민을 마주치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지 않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트럼펫을 든 남자 옆으로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레게 머리를 한 아이가 보였다. 그들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나는 남자가 들고 있는 것이 트럼펫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접이식 은색 킥보드를 가로로 받쳐 들고 묵묵히 걷고 있던 그 남자는 마일스처럼 피부가 온통 까맸다. 그는 잠시 멈춰 서더니 자신의 트럼펫을, 아니 킥보드를 착 펼쳐 아이 옆에 놔 주었다. 아이는 킥보드에 올라탄 뒤 한쪽 발을 땅에 열심히 구르며 나아갔고, 남자는 가볍게 뛰면서 아이를 뒤쫓았다.

둘은 그렇게 내 시야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나는 한동안 자리에 멈춰선 채 그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끝>


*지금까지 <스트레이트, 노 체이서>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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