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회
“집에 가서 편히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오면 되잖아. 얼른 가.”
이나는 옆에 있겠다는 엄마와 언니를 겨우 돌려보내고 한숨을 돌렸다. 잠깐이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안정을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병원 침대에 누워 뉴스에서 나오는 마라톤 테러 후속 보도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서른한 살의 한 모 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만 이나가 봤던 검정 캡을 쓴 남자가 아니었다. 한 씨의 눈매는 그녀가 기억하고 있던 모습과 확연히 달랐다.
―재미로 한번 만들어 본 거예요. 다른 의도는 없었어요.
용의자의 인터뷰를 듣던 이나는 순간 리모콘을 던질 뻔했다. 그가 재미로 벌인 일에 이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결국 아무도 안 죽고 아무도 안 다쳤으니까, 나는 잘못한 게 없습니……
이나는 이어지는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그녀는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다가 잠시 병원 복도로 나갔다. 걷다 보니 어느덧 응급실까지 와 있었다. 취재진들은 이제 병원에서 거의 빠져나간 듯했다. 때마침 병원 로비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조금 전 병실에서 보았던 용의자 인터뷰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나는 문득 누군가가 떠올랐다. 유령처럼 초췌한 얼굴을 하고선 아빠가 입원해 있던 병원 복도를 서성이던,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온몸으로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던 그 사람. 그래, 적어도 이탄은 저 사람처럼 뻔뻔하진 않았지…….
그때 응급차 두 대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달려오더니 급정거하는 것이 보였다. 곧이어 구급 대원들이 부상자를 이동 침대에 내린 뒤 응급실 쪽으로 달려왔다. 부상자 중 한 명은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이동 침대가 막 지나간 길 한쪽에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 얼마 후, 그녀는 가까스로 몸을 돌려 세우며 천천히 눈을 떴다. 출입구 방향 로비 끄트머리 쪽에 번쩍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보아하니 조금 전 지나쳤던 응급 환자 중 한 명에게서 떨어진 물건인 듯했다.
이나는 용기 내어 그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 주저하다가 허리를 굽혀 피가 묻은 메달을 조심스레 집어 올렸다. 오늘 마라톤 대회에 나갔던 사람이었나 보네…… 소매 끝으로 메달을 닦아내자 마라톤 대회명과 완주 거리가 보였다. 5km 완주 메달은 생각보다 근사했다. 메달을 바라보던 이나는 불현듯 언젠가 마라톤 대회에 꼭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5km보다 10km부터 바로 도전해보는 거야. 어쨌거나 이 메달 주인은 부디 무사했으면 좋겠구나…….
그러고 보니 누군가를 위해 행운을 빌어주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나는 스스로가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끝>
*지금까지 <러너스 하이>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