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전날 늦게 잠을 잤거나 일어날 때 몸이 무거운 날이면 박카스를 마시고 출근한다. 빈속에 마신 박카스는 버스를 놓칠세라 뛰는 속도처럼 빠르게 온몸으로 퍼진다. 버스를 타자마자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고 눈을 붙여도 금세 뜨게 만드는 건 박카스 효과다. 하루는 너무 피곤해 버스 안에서 쪽잠을 자고 싶어 박카스를 마시지 않고 가방에 넣어두었다. 회사에 도착하면 마실 계획이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박카스를 잊고 있다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박카스를 발견했다.
며칠 전 퇴근시간, 배가 고파 편의점에 들렀다. 바나나우유와 핫바를 고른 후 전자레인지가 있는 시식대로 갔다. 핫바를 뜯어 30초 설정해 누르고 기다리는 중 옆에서 뭔가를 먹고 있는 분이 눈에 띄었다. 왜소한 체격의 60대가 넘어 보이는 남자분이었다. 모자를 쓰고 있었고 옷은 주머니가 많이 달린 조끼를 입고 있었으며 바지는 건빵바지를 입었다. 배낭을 메고 안전화 비슷한 워커도 신고 있었다.
막일을 하고 오셨나? 싶은 생각과 함께 눈이 간 건 그분의 손에 있는 빵과 박카스였다.
예상하지 못한 조합에 조금 놀라며 ‘왜 우유를 안 먹고 박카스랑 먹지?’ 순간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드셨나? 아니면 저녁일을 나가시는 건가?
행색을 보니 일을 하고 온 듯한데.’
‘혹시 우유 살 돈을 아끼려 박카스로 허기와 피로를 동시에 해결하려 하신 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나면서 왠지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머릿속엔 노인 빈곤, 일자리, 연금 등 사회문제들이 떠오르다 이내 현관문을 열며 웃는 모습으로 표정을 고치는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고 힘들었지 묻는 아내에게 괜찮다고 답할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고 ‘왔어요’ 인사하는 자녀들에게 밥은 챙겨 먹었냐 묻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편의점을 나서며 내 생각대로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을 아침의 몸상태로 되돌리고 귀가하는 가장의 모습, 남편의 모습, 아버지의 모습에 숙연해졌다.
집에 오는 길 가방 속 박카스를 발견한 그 날은 퇴근 후 힘들다며 아이와 잘 놀아주지 않고, 아이의 떼에 같이 짜증을 내고, 저녁을 안 먹는다 했으면서 밥 안차려 주는 아내에게 괜히 심술을 부리는 내 모습을 조금은 바꿔보고 싶어 집 앞에서 박카스를 마시고 들어갔다.
내가 마신 박카스가 그 노인이 마신 박카스와 같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