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월요일 아침
병원 진료 때문에 월요일 오전 반가를 냈다. 병원이 회사 근처라 여유 있게 진료를 볼 수 있었지만 오전 시간을 활용해보고자 9시 땡 하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진료를 보고 약국에 들렀더니 9시 35분. 원래의 계획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많이 남기도 했고 또 읽고 있던 책이 날씨와 어울리지 않았다. 날씨에 따라먹고 싶은 음식이 있고, 듣고 싶은 음악이 있듯 읽고 싶은 책도 있다.
그날은 아침부터 어둑어둑하더니 비가 몇 방울씩 떨어지는 날이었다. 비 예보가 있긴 했지만 오전엔 비 내릴 폼만 잔뜩 잡고 있었다. 이왕이면 분위기 좋은 곳에서 책을 보고 싶어 책도 살 겸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재빠르게 책을 구입하고는 북촌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온 북촌은 여전히 운치있고 고즈넉했다. 맘에 드는 카페를 찾으러 돌아다니며 한옥 기와 위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마지막 남은 벚꽃들과 인사도 하고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옥 쉼터에 앉아 약수 먹듯 숨 한번 들이마시고 문 닫힌 어여쁜 가게를 보며 날씨처럼 무거운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점심 준비를 하는 식당에서 뿜어내는 식재료의 살 냄새를 맡아가며 북촌의 속살을 구석구석 들여다보았다.
주문한 커피를 들고 창가에 앉았다. 따뜻한 라테를 한 모금 마시며 새로 산 책을 꺼냈다. 비가 오는 날이라던가 비가 올 듯 흐린 날에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보내고 싶다. 이런 날엔 많은 사람과 수다를 떠는 것보다는 혼자 있거나 둘 정도의 사람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래서 이런 날은 책을 볼 때도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왁자지껄한 소설보다는 소소한 이야기를 그린 책, 커피를 마시는 것조차 불편하게 만드는 자기 계발서나 거대 담론을 논하는 사회과학 서적보다는 내 이야기, 너 이야기로만 속삭이는 그런 책을 읽고 싶다.
그런 날, 그러고 싶어 구입한 에세이집을 펼쳐 따뜻한 라테를 한 모금하고 작가와 둘만의 수다를 시작했다. 누가 창을 두드려 고개을 들어보니 아침내내 뜸들이던 비가 내린다.
우리의 수다를 방해하는 건 오로지 잔잔히 흐르는 가사를 알 수 없는 어쿠스틱 팝송과 창밖에서 들리는 자동차 바퀴의 물 훑은 소리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