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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rang Jul 09. 2021

일오 슈퍼

그렇게 후원자가 된다


성오 씨가 사라졌다.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외부로 나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만 씨도 사라졌다. 영만 씨가 정문 밖을 나간 사실은 한 손에 쥐고 있는 콜라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번엔 호산 씨가 사라졌다.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를 보고서야 밖을 나갔다 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활재활교사는 놀라워하지도 않고 안전하게 귀가해 다행이라는 안도의 표정도 없다. 으레 있던 일처럼 지갑을 챙기고 정문을 나선다. 3분 남짓 걸어서 도착한 곳은 조그만 슈퍼다. 기관에서 제일 가까운, 오다가다 제일 많이 본,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슈퍼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생활재활교사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며 인사를 한다. 가게 안쪽 방에서 사장님이 나온다. 슈퍼는 작은 방이 딸린 옛날식 구조의 슈퍼다.

“ 아. 왔어요. 어디 보자.... 성오는 작은 우유 하나랑 빵 하나, 영만이는 콜라 큰 거 하나, 그리고 누구냐 그 호산이도 치토스 하나, 전부 해서 칠천 원이네요.”

생활재활교사는 슈퍼 사장님의 손에 만원을 건네고 삼천 원을 거슬러 받고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일오 슈퍼는 34년 동안 그 자리에서 화곡6동 동네 슈퍼 노릇을 해왔다. 그래서 우리 기관의 사정을 잘 안다. 발당장애인이 생활하는 곳인 것도 아시고 발달장애에 대해서도 이해가 높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발달 장애인이라고 가게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고 돈도 안 내고 먹고 돈 내놓으라 하면 도망가는 행태를 가만히 눈감아 주리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가게의 방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있어 나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요새 이런 일이 자주 있다. 고양인가 싶기도 했지만, 자꾸 신경이 쓰였다. 한 번은 부스럭 소리가 나서 나와보니 가게 입구 냉장고에 앞에 다 먹은 우유갑이 놓여 있었다. 가게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니 한 청년이 전봇대 앞에서 과자를 먹고 있었다. 과자를 쉬지 않고 입에 넣는 모습이 조금 이상하게 보였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몇 분 후 냉장고 앞에 또다시 뭔가가 버려져 있었다. 과자 봉지였다. 자세히 보니 아까 전봇대 앞에서 청년이 먹던 과자와 같은 것이었다. ‘아까 그 청년이 놓고 간 건가? 좀 이상해 보이긴 했는데….’ 이후 이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됐다. 다만 냉장고 앞에 놓인 과자 봉지는 매번 달랐다.    

  

부스럭 소리와 함께 가게를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은 빠르게 나와서 도망가는 사람을 쫓아갔다. 이번엔 꼭 잡겠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뒤따라 갔다. 도망가던 사람은 동네 끝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곤 사라졌다. 숨을 들이켜며 주변을 돌아보니 3층짜리 큰 건물이 보였는데 그곳으로 들어간 게 확실해 보였다. 정문 앞에는 00000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학교는 아닌 것 같고 뭐 하는 곳인지 궁금했고 달아난 청년을 찾으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 여자분이 다가와 어떻게 오셨는지 물어봤다. 상황을 설명하자 그 여자분은 누군가를 가리키며 혹시 저분이냐고 되물었다. 사장님은 맞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여자는 고개를 끄떡이면서 미소를 지으며 어쩐지 요즘 어디서 뭘 드시고 오는 것 같았는데 이제 알 것 같네요. 돈을 안 내고 먹은 거죠? 안 그래도 요즘 몇 분이 계속 콜라랑 과자를 드시던데 어디서 생긴 지 통 알 수 없었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 여자분의 이야기가 끝나자 사장님이 물었다.     


 “근데 여긴 뭐 하는 곳이에요?”      


여자 직원의 설명으로 사장님은 장애인 분들이 사는 복지시설임을 알게 되었고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 중 세 분이 그동안 가게에서 과자와 음료를 가져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악의 없이 단순히 간식이 먹고 싶어 했던 행동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전화할 테니 가게로 오라고 일러주고는 미안해하는 직원에게 한마디 더 건넸다.     

 

“괜찮아요. 오죽 먹고 싶었으면 그러겠어요. 어려운 얘들이잖아요.”


직원 입장에서는 이용인 분들이 직원들 모르는 사이 시설을 벗어나면 걱정이 크다. 사고 위험도 있고 시설로 돌아오지 못하면 실종신고까지 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어디 멀리 가지 않고 일오 슈퍼로만 뛰어가는 것이 안심되기도 한다. 이 가게 저 가게 들리면서 과자를 가져간다면 제지하는 가게 직원에 놀라 다른 곳으로 도망가 길을 잃어버리거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동안 이런 일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일오 슈퍼는 경찰을 부를 일도, 놀라서 다른 곳으로 도망갈 일은 없다. 그냥 빈손으로 와서 편하게 먹고 싶은 것 먹고 돌아올 수 있다. 아지트가 되었다. 그러기를 어느덧 20여 년이 되어간다.     


가게를 드나드는 이용인들은 세대교체가 됐지만, 무전취식과 콜라를 쥐고 계주 하듯 달리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이따금 찾아가 감사 인사를 드리면 괜찮다며 매출도 올리고 좋지 뭐 하면서 음료수 하나 드셔 라며 뭐라도 챙겨주시기까지 한다. 요즘도 자주 오느냐고 물어보면 그럼 자주 오지. 그 영만이란 친구는 새로 왔나 봐. 처음 보는 얼굴이던데. 걔는 그렇게 콜라만 가져가더라고. 그래도 얘들이 참 착하고 이뻐. 순수하잖아. 사장님은 옆집 자식, 손주 이야기하듯 이름을 불러가며 웃기도 하고 괜한 걱정거리도 이야기하면서 친근한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가 되셨다.     


어느 날 인사를 드리려 가게를 방문했더니 사장님은 뭘 내놓라는 듯 손바닥을 펴고는 흔들었다. 아직 계산이 안 된 게 있나 생각하던 중 사장님은 쑥스러운 듯 한마디 뚝 던지셨다.     


 “선생님. 그거 좀 줘봐요. 그거 그 후원하려면 뭐 써야 하는 거 아녀요?. 많이는 못 하고….”  

   

그날은 가게의 과자를 다 먹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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