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와 장애인 거주시설
“네, 프라랑입니다”
사무실 내선 전화를 당겨 받았다.
“여기 정문인데요? 누가 원장님을 찾아왔다는데...”
“네. 내려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정문으로 내려갔다.
베레모를 쓴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서 계셨다.
“안녕하세요? 무슨일로 오셨나요?”
“아니 저 옆에 사는 사람인데 원장한테 할 말이 있어서. 원장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해?”
나를 처음 볼 텐데 반말을 하는 거보니 일단 기본 매너는 없고, 사무실 위치를 모르니 원장님을 아는 분은 아닌 것 같고, 그럼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2층으로 안내하는 동안 많은 생각이 오갔다. 원장님은 출장 중이라서 사무국장과 사무실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의 요지는 이러했다.
기관 옆 건물 3층에 사는 분이신데 요즘 밤새 불이 켜져 있어 불빛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잠을 통 못 잤다며 불을 왜 켜고 있냐며 ‘돈도 많은가 봐 밤새 불도 켜고’ 라며 비꼬는 듯한 말도 들렸다. 이 지역에 산 지 40년이 넘었다면서 옛날엔 여기도 없었고 이러지 않았다면서 기관을 존재를 불편해하는 이야기도 하였다.
얼마나 불편했으면 찾아왔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례해 보였다. 만약 우리가 복지시설이 아니라 일반 가정집이었다면 직접 초인종을 눌러 집주인과 대면하여 밤에는 불을 꺼달라고 요청했을까? 그러면서 돈도 많다면 깐죽거리거나 내가 이 동네에 먼저 살았다며 텃세를 부렸을까? 죄송하다는 사과를 수차례 듣고 조치를 취할 것을 몇 차례 약속을 받으시고 자신의 푸념을 한참 늘어놓고는 되돌아갔다.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직원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욕으로 부풀어 오른 볼이 터질세라 입술을 꾹 다물고 서로를 바라봤다.
사회복지기관 중에는 복지수혜자들이 기관에서 집단으로 거주하는 형태의 복지시설이 있다. 아동양육시설, 장애인 거주시설, 노숙인 복지시설, 정신요양시설 등이 대표적인 시설이다. 그중 내가 근무하는 곳은 장애인 거주시설인데 서울에만도 40여 곳이나 있다. 한 시설마다 적게는 30명. 많게는 100명이 넘는 분들이 살고 있다.
시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설립된 지도 대부분 30년을 넘어서고 있으며 더 오래된 시설도 있다. 그 시절 사회복지는 국가의 책임보다는 자선 사업가나 종교단체 등 민간 영역이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한데 모아서 시설을 운영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이곳에는 갈 곳 없는 고아, 장애인, 부랑인들은 시설에 맡겨지고, 끌려오고, 버려졌으며 성인이 될 때까지 또는 평생을 살고 있다. 집단생활에 필요한 큰 건물을 짓다 보니 대부분 시설은 주거지역보다는 도심 외곽에 지어졌으며 지역사회와는 분리 아닌 분리가 되었다. 하지만 도시가 발전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거주시설 주변에도 건물이 생기고 도로와 지하철이 생기면서 사람이 없던 변두리는 어느새 도시화되었다. 자연스럽게 거주시설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된 것이다.
한때 거주시설 인근의 주민들은 지금도 그럴 수 있겠지만 시설의 거주인들로 인해 피해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아동양육시설 인근의 집이나 가게에서는 도난사고와 물품 파손 그리고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장난으로 많은 불편함을 겪었던 때가 있었고 장애인 거주시설은 비명 소리와 웃음소리가 밤낮으로 울렸고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외출을 할 때면 불쾌함을 준 시기도 있었다.
사회복지가 민간이 아닌 국가의 책임이 되면서 거주시설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의식주에만 집중하던 서비스는 이용인의 성장과 잠재능력을 개발하는 서비스로 변했고 시설 이용 정원도 점점 줄여나가며 집단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바뀌었다. 또한 거주시설에서는 이용인들의 지역사회생활을 더욱 활성화하여 시설 생활과 지역사회생활의 차이를 줄여나갔다. 이로 인해 새로운 경험에서 오는 유혹과 당혹함으로 벌어지는 실수와 사고들을 예방하게 되었고 혹시 피해를 주었다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라는 동정심을 내세우며 처우를 바라지 않고 정당한 보상과 사과를 통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런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왔다. 무서웠던 아이들은 보살핌이 필요하고 따뜻함이 필요하며 때론 모르는 척이 필요한 아이들로 변했고 불편했던 장애인은 기다림이 필요하고 이해가 필요하며 도움이 필요한 주민으로 변했다. 시설 이용인과 주민들은 오랜 기간 같은 지역에 살아가면서 서로의 처지를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서 익숙해져 간 것이다. 오다가다 마주치면 못 본체 하던 경계의 시선은 늘 보던 풍경을 보듯 자연스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변했다. 우리는 이렇게 옆집, 한동네 사는 평범한 이웃이 되어갔다.
정문에서 전화가 왔다.
“누가 찾아왔는데 빨리 내려와 보세요”
오토바이 한 대가 서 있다.
어떤 일로 오셨는지 물어보자
“여기가 00000집 맞죠? 아니 어떤 손님이 쌀을 배달시켜서 가져왔어요”
쌀집 사장님이 이야기했다.
“그래요? 혹시 그분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내가 다시 물어보자
“그냥 갔다 주라고 만 하고 아무 얘기 없던데. 누군지 모르세요?”
오히려 나에게 물어본다.
“... 네”
이웃이라고 모두 좋은 순 없다. 협조적인 공동체에도 문제는 있다. 그렇지만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달라 생기는 문제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있다면 언제든지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약해 보인다고 장애인이라고 부모가 없다고 복지시설에 산다고 세금으로 운영된다고 얕잡아 보는 태도로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관계는 좋아질 수 없다. 오히려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런 관계를 이웃이라고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밤새 건물에 불이 켜있어 잠을 못 잤다며 찾아오거나 옥상에 설치한 천막의 펄럭이는 소리 때문에 시끄럽다며 폐쇄시키겠다는 협박을 하는 옆집 사람들보다는 몰래 쌀을 두고 가는, 치킨을 몇 마리 보내주면 다 드실 수 있다고 묻는, 같은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알아주는,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을 이웃이라 부르고 싶다.
그런 이웃과 살고 싶다.
그런 이웃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