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rang Sep 25. 2020

현장

사회복지시설의 생활재활교사와 사무실 직원

몇 년 전  ‘미생’이란 드라마가 방영됐다. 주인공의 직장생활을 바둑판에 비유하며 인턴으로 시작해 정규직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드라마다. 주인공의 성장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용기를 얻었던 드라마였다. 극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인턴끼리 짝을 지어 PT 발표를 하고 자신의 짝에게 미리 준비한 물건을 판매하며 세일즈 능력을 평가받는 장면이다. 주인공의 짝인 한석렬은  회사 제품의 생산현장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고급 섬유와 그 섬유들을 만드는 노하우가 담긴 노트를 판매했고 주인공 장그래는 사무실에서 싣는 실내화를 판매했다. 서로 다른 현장의 물건을 판매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사회복지기관은 여러 유형이 있지만 그중 내가 일하는 곳은 거주시설에 속한다. 거주시설은 입주인들에게 주거 서비스를 지원하는 곳인데 대표적으로 장애인 거주시설과 아동양육시설이 있다. 거주시설 종사자는 입주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생활재활교사 또는 생활 지도원과 사무실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직 직원으로 나뉜다.         


생활재활교사는 3교대 형태로 근무를 한다. 휴무와 근무는 짜인 근무표대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주말과 공휴일에도 일을 할 때가 많다. 교대 근무다 보니 연차 사용도 어려움이 많다. 주요 업무는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일이다. 식사, 청결, 운동, 잠자는 순간까지 옆에서 꼼꼼히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다. 거주인 개개인의 성격이 달라 같은 서비스도 여러 방법으로 지원해야 하니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로하다. 또 동료와 함께 일하기 때문에 자신의 방식보다는 협의된 방식으로 업무를 해야 하는 보수적인 환경이기도 하다. 그리고  거주인의 삶을 지원하는 일이기에 업무에 종료가 없다. 출근하면 바통을 받고 퇴근하면 바통을 넘기며 결승점이 없는 계주를 하듯 근무를 한다.    

  

사무실 직원은 9시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한다. 가끔 당직이 있을 때 빼고는 주말과 공휴일은 모두 쉰다.  주요 업무는 회계, 후원, 봉사활동 업무, 교육 진행, 운전 지원, 시설관리 등 행정업무들이다. 각 업무마다 담당자가 있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일을 할 수 있다.   업무의 시작과 끝을 조율할 수 있어 연차 사용에도 부담이 적다. 주로 컴퓨터와 전화로 업무를 처리하여 육체적인 노동의 강도는 덜하지만 가끔씩은 정신적으로 힘든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이처럼 두 부류의 직원은 서로 업무가 완전히 다르고 일하는 공간도 달라 대면할 일도 많지 않다.


장그래는 슬리퍼의 냄새를 맡는다. 땀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하며 한석렬에게 말한다. 

“ 땀 냄새,  사무실도 현장이란 뜻입니다. 그 사무현장의 전투화를 당신에게 팔겠습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석렬이 말한다. 

“ 안 사겠습니다. 사무실이 현장이라니 말장난이 지나치군요. 현장이 뭔지나 아십니까? 사무실 끄적임으로 

몇 번이고 쉽게 쉽게 잘려나가는 구조조정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사람을 현장 노동자라고 합니다. 그들의 전투화를 소개해드릴까요? 워커 신고 일합니다. 무거운 공구 떨어지면 발등 아작 나니까. 전투화란 그런 겁니다. 

전 당신 물건 사지 않겠습니다”. 


장그래는 한석률의 대답을 예상했듯이 또다시 이야기한다. 

“한석률 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현장을 강조했습니다. 아니 현장만을 강조했죠. 한석률 씨가 생각하는 현장의 치열함은 기계가 바쁘게 돌아가고 힘을 들여 제품을 만들고 옮기는 것인가 봅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수많은 공모전에도 입상한 자신의 기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보여주는 곳이 현장이라고 생각했겠죠”.    

거주시설에서는 입주인의 일상생활을 직접 지원하는 생활재활교사를 현장 종사자라고 부른다.  아마도 더 힘든 일, 험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듯하다.  사무실 직원은 회계문서를 잘 작성했는지 검토하는 사람, 근태현황을 점검하는 사람,  빠진 서류는 없는지  찾아내는 사람, 시설물은 잘 사용하는지 확인하는 사람, 주는 후원금과 오는 봉사자만 관리하는 사람, 운전만 지원하는 사람, 불필요한 교육을 준비하는 사람,  생활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사람, 입주인의 일상생활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마치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상위의 조직처럼 비치고 있다.  이처럼 생활재활교사와 사무실 직원 사이에는 섞일 듯 섞이지 못하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장그래의 대사를 빗대어 이야기해보면 사무실 직원은 매일 원활한 사업운영을 위해 항목의 잔액을  체크하고 숫자 하나 때문에 보조금 지급이 미뤄지지 않도록 실수를 방지한다. 보다 나은 근무 환경과 시설 운영을 위해 법적 해석을 검토하고 결과를 집행한다. 후원, 봉사 유치를 위해 밀고 당기는 많은 대화가 있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서류만 넘기면 되는 것이 아니라 관할 구청의 오케이 사인을 받기 위해 몇 년 전 서류까지 뒤져가며 작성하고 시설평가 준비로 밤까지 일하기도 한다. 생활재활교사가 말하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행정의 과정을 거친 이후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 행정은 사무실을 거치지 않고 실행될 수 없다.     


생활재활교사와 사무실 직원은 같은 공간 안에서 시설 운영과 사업 진행을 위해  예산과 각종 지침을 검토하고 주거공간이 안전하고 쾌적한지 확인하고 기관을 알려 부족한 자원을 채워나가며 이러한 토대 위에서 입주인에게 보다 나은 삶을 지원하고 있다. 이 둘은 다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 존재, 서로 협력하는 존재,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존재이다. 그래서 두 곳 모두 사회복지현장인 것이다.     


장그래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공장과 사무는 크게 보아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 사이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실수와 실패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큰 그림으로 본다면 우린 모두 이로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현장은 한석률 씨가 생각하는 현장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행의 조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