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와 함께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성냥팔이 소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전날 눈이 많이 내려 아직 거리 곳곳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구정을 앞둔 서울역엔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9살쯤 돼 보이는 소년은 역 주변과 역내를 오가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성냥을 내밀고 있었다.
“성냥 사세요.”
소년은 45mm의 성냥이 20개씩 들어있는 작은 네모 모양의 성냥갑을 팔고 있었다.
“요즘 성냥을 어따 쓰냐? 이런 건 어디서 구했어?”
“넌 성냥을 왜 팔고 다니니?”
“하나에 얼마니? 너무 비싸네. 다음에 살게.”
몇몇이 관심을 보였지만 사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이터를 보여주며 지나치거나 손바닥을 보이며 괜찮다는 표시를 보이며 빠른 걸음으로 갈 길을 갔다. 소년은 배낭에 몇 개인지도 모르고 급하게 담아온 성냥갑을 세 개 밖에 팔지 못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전화 통화를 하고 양손에는 선물을 몇 개씩이나 든 사람들은 많았지만 소년에게는 복을 주는 사람도, 성냥을 선물로 사는 사람은 없었다. 서울역에 도착해 큰바늘과 작은 바늘이 합쳐진 시계를 보며 신기해하던 서울역 중앙의 대형 시계는 어느덧 저녁 9시를 알리는 종을 치고 있다. 점심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소년은 배가 고프지만 음식을 사지 않았다. 주머니엔 성냥 세 갑을 판 만 오천 원이 있었지만 그 돈을 쓸 수 없었다. 그 돈으로 먹을 것을 사면 엄마를 만날 수 없다.
이주일 전 서울 서남구에 있는 서남 보육원으로 왔다. 소년의 기억으로는 엄마가 처음으로 새것을 사준 검은색 거위털 점퍼와 책가방을 메고.
“엄마 이거 내 거야?”
“응. 선물이야. 내일 엄마랑 어디 갈 때가 있어서 그때 입고 가려고 산거야. 한번 입어봐”
“와, 진짜. 내 거야!”
소년은 잠옷 차림에 패딩을 입고 가방을 메보고는 거울 앞에 선다.
“너무 이쁘다. 엄마 감사합니다.”
“그래 잘 어울리네. 늦었어. 얼른 자.”
엄마는 소년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방을 나선다.
소년은 옷을 벗으며 아껴 입을게요 인사를 한다.
다음날 소년은 엄마와 서남 보육원으로 갔다. 소년은 사무실 같은 곳에 혼자 앉아 있었고 엄마는 옆 사무실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는 소년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운 것 같았다. 눈 주위가 빨갛고 눈도 젖어 있었다. 엄마는 소년 앞에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얼굴을 마주 보며 얘기했다.
“앞으로 여기서 지낼 거야. 미안해.”
엄마는 흐느끼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 말이었다.
“엄마가 부자 되면 찾으러 올게.”
소년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알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 때문도 아니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엄마 때문도 아니다. 엄마의 마지막 말에서 이유가 있었다. 부자가 아니어서, 돈이 없어서 그러니까 가난하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엄마와 함께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소년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보육원에서는 가끔씩 금요일 저녁부터 원생들은 성냥공장으로부터 의뢰받은 성냥갑 포장 작업을 하는데 작업이 완료된 성냥갑은 월요일 저녁에 수거해간다. 소년은 첫 포장작업을 하던 날 보육원 선생님이 큰소리로 이야기했다.
“이거 하나하나가 다 돈이야. 불량 내지 마. 이 돈으로 우리가 맛있는 것 사 먹고 놀러 가는 거야.”
소년은 순간 눈이 번쩍였다. 이거면 되겠구나. 이 성냥을 팔면 돈을 벌 수 있겠고 그러면 부자가 될 수 있겠어. 내가 부자가 돼서 엄마를 찾으면 되잖아 소년은 자신이 작업한 성냥갑이 자신이 내다 팔 물건이라 생각하며 첫 작업이지만 능숙하고 빠르게 성냥갑을 만들었다. 소년은 완성된 성냥갑이 어디에 보관하는지 알아내려 일요일 아침부터 2층 창문을 기웃거렸다. 주말 동안 작업한 성냥갑들이 정문 옆 창고에 쌓아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정문 경비 아저씨가 점심 식사를 하러 11시 30분부터 잠시 자리를 비운다는 것도 알아냈다.
월요일 11시 20분. 엄마가 사준 패딩 입고 어깨에 가방을 멨다. 경비실을 바라보고 있다. 경비 아저씨가 얼굴을 들 때마다 눈이 마주칠까 창문 밑으로 허리를 숙인다. 복도의 시계를 보니 11시 30분이다. 얼굴을 천천히 들어 창문을 보니 경비실엔 아무도 없다. 소년은 재빨리 계단을 내려가 정문으로 달려갔다. 창고를 열고 박스에 있는 성냥갑을 가방에 담기 시작했다. 가방에 성냥이 가득 담기자 지퍼를 잠그고 정문을 빠져나와 뛰기 시작했다. 누가 창문으로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보이는 골목으로 무작정 뛰었다. 한참에 뛰다 필로티 구조의 빌라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 뒤에 몸을 숨겼다.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며 가방을 열어 성냥을 확인했다. 숨을 고르고 정류장으로 향했다. 첫 번째로 오는 버스를 탔다.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정류장을 따라 내리고 보니 서울역이었다.
“성냥 사세요.”
서울역의 대형 시계는 11시를 알리고 있다. 역내의 식당과 상점들도 간판 불을 끄고 정리 중이다. 그 많던 사람들도 이젠 숫자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었다. 사람들이 사라지자 안보이던 풍경이 보였다. 바닥에 박스를 깔고 앉아있거나 누워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왜 여기서 잠을 자지 생각하며 가까이 가보자 이상한 냄새가 났다. 생선 썩은 내인지 꼬랑내인지 알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코 속을 찌르자 소년은 인상을 쓰며 손가락으로 코를 막았다. 박스 위에 앉아 있던 긴 머리의 아저씨가 소년을 보며 야! 넌 왜 혼자 돌아다니냐. 그리고는 이리 오라며 손짓 하자 소년은 겁이 나서 역 밖으로 도망쳤다. 밖은 너무 추웠다. 소년은 점퍼에 달린 모자를 썼다. 손은 주머니에 넣고 서울역 광장으로 갔다. 택시를 타려고 줄을 선 사람들과 지하철역 출구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성냥을 팔아볼까 하다가 모두 주머니에 넣고 있어서 사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추위를 피하고자 본능적으로 불빛이 많은 곳으로 걸어갔다. 걷다 보니 지하철 출구가 나왔다. 서울역 14번 출구.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지하철역 안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하철 역에는 서울역에서 봤던 냄새나고 머리 긴 아저씨가 더 많이 보였다. 바람을 막으려 박스를 세워놓고 누워있는 사람, 박스를 덥고 누워있는 사람. 더러운 이불을 덮고 있는 사람. 벽에 기대앉아 담요를 무릎까지 덮고 졸고 있는 사람. 대형 광고판 앞에 모여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는 세명. 비틀거리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 제자리에 서서 손가락을 허공에 찌르며 욕을 하는 사람. 비슷한 머리 길이와 수염,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소년은 주변에 맴돌고 있었다. 소년은 무서웠다. 혹시 눈을 마주칠까, 오라고 손짓을 할까 겁이 났다. 일제히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 자신에게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때 야 너 가출했냐 하는 큰소리가 나자 재빨리 지하철 밖으로 도망쳤다. 소년은 너무 무서웠다. 너무 배고팠다. 너무 추웠다.
...... 엄마.
자신도 모르게 엄마를 불렀다. 눈물이 떨어졌다. 하지만 만 오천으로는 엄마와 함께 살 수 없었다. 소년은 방과 후 혼자 챙겨 먹던 밥이 그리웠다. 잠자는 시간을 알리는 9시 스포츠 뉴스가 보고 싶었다. 자는 척하는 나의 이마를 쓰다듬고 해 주던 엄마의 뽀뽀가 그리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을 때 일하러 나가는 엄마의 원망스러운 뒷모습이 보고 싶었다. 소년은 불이 꺼진 건물의 주차장으로 갔다. 차 뒤에 앉았다. 가방을 내려놓자 성냥이 있었던 게 생각났다. 성냥갑을 꺼내 성냥을 켰다. 성냥이 부러졌다. 다시 성냥을 켰다. 또 부러졌다. 다시 성냥을 켰다. 이번엔 불이 붙었다. 하지만 바람에 금방 꺼졌다. 성냥을 다시 켰다. 불이 붙었다. 노란빛을 보니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성냥은 금세 탔다. 손이 뜨거워지자 바닥에 던져 발로 비벼 껐다. 다시 성냥을 켰다. 엄마 생각이 났다.
부자가 되려고 이 밤중에도 일하는 건 아닐까.
매일 어깨가 아프다고 하셨는데 더 아프면 어떡하지.
돈이 얼마큼 있어야 부자인 걸까?
난 엄마와 함께 살고 싶은데 엄마는 나랑 살고 싶지 않은 걸까?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성냥불을 끄고 바닥에 엎드려 밑을 봤다. 한 남자가 멈춰 서서 오줌을 누고 있다. 다시 멀어지는 발소리. 소년은 문득 지하철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분들도 추울 텐데 성냥을 주고 올까 생각하다 고개를 흔들었다.
날 잡아갈지도 몰라.
그런데 그분들도 나처럼 지금 엄마가 보고 싶겠지?
그분들도 가족이 있겠지?
혹시 그분들도 부자가 돼야 엄마와 함께 살 수 있는 건가?
낮에는 무엇을 팔고 다닐까?
그분들도 꼭 엄마를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다시 성냥을 켰다. 성냥 타는 냄새가 좋아졌다.
성냥불을 보고 있으니 잠이 몰려온다. 머리를 자동차 뒤 범퍼에 기대고 점퍼를 무릎까지 내리고 두 손은 양쪽 겨드랑이에 껴고 눈을 감았다. 몸을 웅크리니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다.
여기서 잠들면 안 되는데.
근데 너무 졸려.
엄마 보고 싶…….
갑자기 주변이 갑자기 환해졌다.
“얼른 일어나."
엄마가 방의 불을 켜며 큰소리로 말했다.
소년은 벌떡 일어났다. 엄마를 보고는 달려가 와락 안겼다.
“엄마 오늘 회사 안 가?”
“애가 갑자기 왜 이래? 오늘부터 설날이잖아. 회사 안 가지. 밥 먹고 할머니네 가야 하니까. 빨리 세수해.”
소년은 눈물이 반쯤 고여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는 나랑 헤어지면 안 돼. 아빠처럼 사라지지 마.”
엄마는 놀라며 소년을 바라본다. 키를 맞춘 후 소년을 안아준다.
“오늘 이상하네. 엄마는 네가 아빠 없이도 씩씩하게 자라줘서 너무 고마워. 사랑해. 우리 아들”
엄마도 눈물이 반쯤 고인다.
소년은 밥을 먹다 말고 손가락을 접으며 오늘 만날 어른들의 숫자를 센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모, 외삼촌 그리고 엄마를 포함하면 모두 다섯 명. 세뱃돈을 상상하며 웃는다. 밥 위에 계란 프라이를 올려주는 엄마를 보며 말한다.
“이젠 엄마랑 계속 함께 살 수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