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개월 20일
아이 앞에선 절대 부부싸움을 하지 말자. 수십수백 번 한 다짐이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다. 벌써 크고 작은 다툼을 수십 번은 한 것 같다. 수백은 아니라 다행이라 말하고 싶지만 매번 다짐해도 이러는 걸 보면 곧 수백 번도 채울 기세다. 대부분이 집안일 좀 도와라와 좀 쉬자로 시작해 네가 힘드니 내가 힘드니로 화력은 절절에 치닫는다.
다툼이 격해지면 주아 눈치를 보게 된다. 다 듣고 있고 분위기도 다 파악하고 있다. 그 심정이 어떨지 알면서도 싸우는 걸 보면 좋은 아빠, 좋은 부모 되기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야말로 또 다른 내가 되어야 하는 하고 삶의 중심이 옮겨야 하는데 그게 쉽게 될 리 없다.
어느 주말 저녁, 아내와 맥주 한잔을 하다 또 말다툼이 벌어졌다. 주아는 맞은편에 앉아 태블릿 pc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우리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서로를 향해 맥주처럼 톡 쏘고 있었다. 청량감보단 씁쓸한 맛을 내며 취기 오른 듯 얼굴을 붉히고 알코올처럼 금세 날아가지만 뒤끝 있는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때 주아가 벌떡 일어나 내 등을 때렸다. 주아에게 왜 아빠를 때리냐고 따져 묻자 주아가 큰소리로 말했다.
“왜 나한테 그래, 둘이 싸우잖아”
아내와 나는 순간 서로를 바라보고는 얼른 껴안았다.
“주아야, 엄마 아빠 화해했어. 이것 봐 화해하고 있잖아.”
조금 전까지 후유증이 3일 갈 정도의 레벨로 싸우던 우리는 어느새 다정한 부부가 되어 볼을 비비며 서로를 안아주고 있다. 우리를 본 주아가 다시 한번 큰소리쳤다.
“그래도 소용없어. 싸우잖아.”
목을 세우고 하늘을 보며 외치는 주아의 속상한 외침에 우리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 웃음으로 싸움은 끝났지만 대신 주아의 기분을 풀어야 하는 공동의 과제가 생겼다.
아이 앞에선 싸우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만 오늘처럼 말다툼이라도 하게 될 때면 반드시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주아에게도 이유를 설명해준다. 화해하고 또 싸우고, 싸우고 또 화해하는 모습을 주아는 소용없다 말하지만 그 속 뜻은 싸우기 전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말일 것이다.
소용없다는 주아의 기분은 곰돌이 모양 젤리로 풀어주었다. 아내와 나는 다시 잔을 부딪히고 맥주 한 모금 시원하게 하고는 싸우기 전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