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개월 15일
며칠 전 주아가 갑자기 울었다. 아내와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듣더니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되지 마”.
엄마, 아빠 더러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지 말라며 운 것이었다. 우리는 어이가 없었다. 아내는 주아를 안아 눈물을 닦아주고 이마와 볼에 뽀뽀하며 달랬다. 뜬금없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지 말라며 우는 게 어떤 이유인지 궁금했다.
“주아야, 근데 왜 할아버지 할머니 되지 말라며 운 거야?”
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을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다. 우린 그냥 주아를 꼭 안아주었다.
나는 혼자 생각했다. 주아는 왜 울었을까. 혹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같이 못 놀아줘서 그런가, 아니면 엄마 아빠 얼굴에 주름이 많은 모습이 싫어서 그런 걸까, 힘이 없는 모습이 싫어서 그런 걸까 이런저런 생각은 죽음까지 닿았다. 혹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자기 곁을 빨리 떠날까 봐 그랬던 걸까? 갑자기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내 품에 있던 주아를 번쩍 들어 꼭 안아주었다. 내 생각이 너무 앞선 건지 아닌지는 오직 주아만 알 뿐이다. 어찌 됐건 아이가 운다는 건 속상한 일이다. 이후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주아는 아직도 이유를 말하지 않고 있다.
주아가 말을 안들을 때 아내의 무기가 하나 더 생겼다.
“너 말 안 들으면 엄마 빨리 할머니 될 거야.”
이런 말을 하면 주아는 안돼 하며 울먹인다.
여기서 내가 한 수 더 뜬다. 나는 목소리를 할아버지처럼 변조하여 말한다.
“아이고 주아야, 너 말 안 들어서 아빠는 할아버지 됐다.”
목이 잔뜩 힘을 주고 신음소리에 말을 섞으며 말을 이어갔다.
“너 장난감 정리 안 할 거야?.
아내는 애쓰는 나를 보며 주아는 관심도 안 주는데 혼자 오버하지 말라한다. 내가 꿋꿋하게 쉰 목소로 말하자 주아가 다가와 한마디 한다.
“아빠 그러면 사레걸려.”
난 그 말에 한참을 웃었다.
웃기고 울리고 요즘은 못하는 말이 없다. 어느새 많이 컸다. 아이가 커가는 걸 보고 있으면 부모는 늙어가는 줄 모른다. 주아야,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모습이 변한다 한들 우리는 영원한 너의 엄마 아빠 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