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개월 25일
10월 29일, 늦은 밤 이태원 참사 소식을 알았다. 그 당시만 해도 사망자는 없었고 심정지 수십 명, 부상자 수십 명이란 속보였다. 사망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며 새벽까지 관련 속보를 보다 겨우 잠들었다. 무서운 밤이었다. 서너 시간 자고 일어나 제일 먼저 핸드폰으로 뉴스를 봤다. 사망자와 부상자의 숫자를 보고 숨이 멎었다.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잘못 봤길 바라며 다른 뉴스를 찾아봤다. 처참한 아침이었다.
10월 31일 월요일은 주아 어린이집 핼러윈 데이 축제가 예정된 날이다. 아내는 며칠 동안 선물 봉투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막대사탕에 휴지를 감고 눈코 입을 그려 유령 사탕을 만들며 주아 친구들에게 줄 핼러윈 선물을 준비했다. 분장은 좀비로 정했다. 주아가 좀비 흉내를 잘 내서다.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매일 좀비 흉내를 내며 논다고 한다.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데 같은 행사를 웃으며 즐기는 것이 옳은 일인지, 마땅한 일인지. 어린이집에서 행사를 진행하더라고 변장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주아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내일은 좀비 흉내도 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우리의 고민과는 다르게 금세 알겠다고, 괜찮다고 말했다. 다행히 오후 늦게 어린이집에서 행사 취소 문자가 왔다.
아내는 선물도 보내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선물도 마음에 걸렸단다. 어린이집을 다녀온 주아에게 좀비 흉내 냈냐고 물었다. 눈을 크게 뜨며 안 냈다고 한다. 기특했다. 그리곤 주아가 한마디 했다.
“근데 루아랑 준현이는 좀비 흉내 냈어.”
그랬어 하며 맞장구 쳐주고는 꼭 안아줬다. 무릎에 앉은 주아는 한 마디 더했다.
“다른 친구들은 선물 가져왔어. 엄마도 내일 보내. 힘들게 만들었잖아”
그럴까 하며 다시 맞장구치고는 아까보다 더 꼭 안아줬다.
믿지 못할 참사로 희생된 분들과 유가족, 부상자분들의 슬픔을 헤아리려는 엄마, 아빠의 마음과 힘들게 만든 선물을 보내지 못한 엄마의 아쉬움을 알아본 주아의 마음은 아마도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다섯 살 주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감. 나는 주아가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세상일에 더 많이 공감하며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게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