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개월 5일
주말, 아내의 친정으로 우리 가족과 처제네 가족이 모였다. 아이들은 먼저 저녁밥을 먹고 방에서 놀고 있었다. 어른들은 식탁에 모여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가 한창일 때 방에서 ‘아’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유를 알아보니 주아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형의 등을 밟고 침대로 올라간 것이다. 순간 놀라고 아파서 소리를 낸 것이다. 나는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헤치는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일러주고 형에게 사과시키려고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한, 두 마디로 끝나거나 애들끼리 놀 때는 그럴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텐데 조금 전 상황이 떠올랐다.
주아의 외할아버지, 그러니까 장인어른은 올해 연세가 예순아홉이신데도 일을 하신다. 하시는 일은 전날 가맹점에서 주문한 물품을 3.5톤 트럭에 가득 싣고 여러 매장을 돌며 내려주는 일이다. 젊은 사람도 힘든 일인데 십 년을 넘게 해오셨다. 더 대단한 건 근무시간인데 새벽 두 시부터 시작해서 정오쯤 일이 끝난다. 할아버지가 타고 다니는 빨간색 네모에 흰색 동그라미가 여러 개 그려있는 다이소 트럭은 청춘 같은 할아버지의 트레이드 마크다.
하루는 주아가 엄마와 다이소에 갔다가 다이소 트럭 모양의 자동차 조립장난감을 사 왔다. 트럭을 조립해서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하겠단다. 엄마와 조립 후 신난 주아는 퇴근한 나에게 눈을 감고 손바닥을 펴보라고 한다. 손바닥 위에 다이소 트럭을 올려놓았다. 감탄사를 내며 이게 뭐냐 묻자 할아버지 선물이란다. 자동차 욕심쟁이인 주아가 자동차를 선물로 준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다.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자 주아는 다이소 트럭을 허리 뒤에 숨기고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나에게 했던 대로 손을 뻗어 보란다. 할아버지 손 위에 트럭을 올려놓자 이게 뭐야, 다이소 트럭이네 하시며 환하게 웃으신다. 고맙다며 식탁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으셨다.
처제네 아들인 초등학교 2학년 형아가 식탁에 있던 다이소 트럭을 발견했다. 그리곤 다시 조립해보겠다며 분리했다. 주아가 다가왔다. 표정이 굳어있다. 형아 옆에 바짝 붙어 조립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조립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울음을 터트렸다. 다가가서 보니 블록 하나가 없어 조립이 안 되는 듯 보였다. 그래서 다시 뜯고 조립하고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걸 주아가 불안해한 듯했다. 식탁 의자 밑에 있는 블록 하나를 발견하고 건네며 말했다.
“이게 없어서 조립이 안 된 거야. 이제 완성할 수 있어.”
트럭은 바로 완성됐다. 차를 완성한 형아는 재빨리 다른 놀거리를 찾아 사라지고 주아는 트럭을 꼭 쥐었다.
‘할아버지에게 준 선물인데 형아가 망가트리는 줄 알고 초조했나 보구나.’
나는 주아의 마음을 읽어봤다. 주아와 함께 트럭은 다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우선 형에게 사과시켰다. 그리고 형아 누나는 방에서 나오고 주아와 단 둘이 남았다. 나는 바닥에 앉아 주아에게 아빠 앞에 앉으라고 말했다.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주아는 들은 척하지 않고 침대 위에서 뜀뛰기를 했다.
“아빠는 주아가 올 때까지 기다릴게.”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주아는 못 본체 못 들은 체 하며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같은 말을 몇 차례 했을 때 주아가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오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앞으로 다가오라고 말하자 슬금슬금 다가왔다. 몸을 정면으로 하지 않고 한쪽으로 틀어 앉았다. 이렇게 하기까지 오 분이 넘게 걸렸다.
“주아야, 왜 형아 등 밟았어?”
“혹시 아까 형아가 다이소 트럭 조립할 때 고장 내는 줄 알고 속상해서 그랬어?”
내가 묻자 주아는 나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주아가 할아버지 선물로 준 건데, 속상했구나.”
밖에서는 어른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왜 이리 오래 걸려, 주아도 한 고집하네, 빨리 나와요...
나는 마음이 초초해졌다. 장인 장모님과 식사 중이었는데 예상보다 자리를 오래 비웠기 때문이다.
“주아야, 속상하고 화가 나더라도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해치게 하면 안 돼. 알겠어?”
주아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주아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두어 번 더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주아야, 아빠 눈을 보고 대답해야지.”
나는 주아가 내 눈을 보며 대답을 바랐다. 아빠의 단호함과 주아의 다짐을 보고 싶어서였다. 밖에서는 어른들이 그냥 나오라는 소리가 들린다. 형아도 괜히 자신 때문에 주아가 혼나는 것 같다며 난처해하는 것 같았다. 이러기를 또 오 분. 그냥 다음부터 그러지 마 하고 돌아갈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자리에 앉히고 대답을 들으려고 했던 시간이 의미가 사라질까 버텼다. 주아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작은 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나는 눈을 맞춰 대답하는 것까지는 양보했다. 주아를 안아주고 다시 식사 자리로 돌아왔다.
아이를 훈육한 이후엔 마음이 편치 않다. 아이가 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약속하면 서로 좋으련만 그건 부모의 바람일 뿐 쉽고 편한 훈육은 없다. 밥 한 숟가락 뜨면서 조금 전 일을 복기해본다. 내가 감정적이진 않았는지, 내가 원하는 방식을 고집하진 않았는지, 아이의 감정을 넘겨짚진 않았는지. 혹시 주아가 형을 밟은 것이 그냥 침대에 오르려다 실수로 그런 건 아니었을까? 그럴 수 있었는데 자동차 일로 과대 해석한 건 아니었을까? 눈을 맞추며 대답까지 들으려 했던 건 감정적인 대처가 아니었을까? 밥을 씹으며 조금 전 일들도 곱씹었다. 힐끗 주아를 보니 누나, 형아랑 웃으며 목욕 준비를 하고 있다. 맞은 사람이 발 뻗고 잔다더니 아무래도 마음 불편한 내가 늘 죄인인가 보다. 아이들은 그렇게 하나씩 배워 나가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마음에 잔상처가 남는다. 스스로 할퀸 상처다. 그리고 내가 남긴 상처는 아이가 부르는 ‘아빠 ’ 소리에 금세 치유된다.
훈육은 바른 걸 알려주는 일이지만 부모에게는 벌과 같다. 언제쯤 이 벌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