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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rang Dec 07. 2022

부끄럼

53개월 25일

우리 가족은 주말이 되면 편의점으로 커피를 마시러 간다. 거리는 걸어서 3분. 봄, 가을에는 야외 파라솔에서 여름, 겨울에는 편의점 내부에 있는 식탁에서 커피와 간식을 먹는다. 집 인근에 카페나 상점이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때도 있지만 나온 김에 바람도 한번 쐬고 사장님과 수다도 떨기 위함이다. 물론 수다는 아내의 몫이다. 아내와 난 커피와 쿠키, 주아는 뽀로로 음료와 젤리가 선호 메뉴다. 아내는 커피 한 모금하고는 꼭 나한테 한마디 한다. 편의점 커피라고 무시 말라고. 


아내가 모임이 있어 외출한 어느 일요일, 주아 난 어김없이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길바닥에 종이와 박스가 널브러져 있었다. 종이류만 떨어진 걸 보니 재활용으로 모아 논 박스가 바람에 날렸거나 쌓여 있던 게 떨어지며 흩어진 것처럼 보였다.

“바닥에 종이가 많이 떨어져 있네. 바람에 날렸나?” 

혼잣말하듯 주아에게 말했다. 주아는 ‘그러게’ 라며 대답하고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난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군고구마, 주아는 젤리와 딸기우유를 골라 주말의 여유를 즐겼다.  


간식을 먹고 돌아오는 길, 종이로 더럽혀진 길을 다시 지나가며 주아에게  길이 더러워 보기가 참 안 좋다고 말했다. 뒷짐을 지고 앞서가던 나에게 주아가 말했다. 

“아빠, 우리가 정리할까?”

주아의 말에 난 그러자라고 대답하곤 엄지를 세워 보이며 ‘진짜 멋있다, 아빠 방금 심쿵했어’라고 칭찬했다. 허리를 숙여 종이를 정리하는데 밀려오는 부끄러움. ‘아, 주아가 나보다 낫구나.’ 


핑계를 대자면 종이가 너무 많아 주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종이가 얼마 없었으면 직접 주우면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으로 시작해서 환경문제까지 들먹이며 멋진 아빠 행세를 했을 텐데 그 순간은 말만 번지르르한 행동하지 않는 아빠, 선행도 선택적으로 하는 아빠였다. 창피했다. 


“주아야, 아빠가 정신 바짝 차릴게. 그리고 너 진짜 멋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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