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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rang Feb 06. 2023

우리는 기억합니다.

100일


나도 그곳을 좋아했었어. 그곳에 가면 자유를 느꼈거든. 혼자가도 어색하지 않고 함께 가면 더 신나는 곳이었지. 가을이면 남산 소월길 은행잎을 따라서 거기까지 걸어가 시원한 맥주도 마셨었지. 심장박동과 엇박자로 울리는 비트에 쉴 틈 없이 춤을 추다 보면 아침이 오는 줄도 몰랐어. 다양한 언어와 모습이 어우러진 곳이었지.


그런데, 그런데 이젠 그곳에 못 가겠어. 무서워서. 미안해서. 나의 웃음에 너의 울음이 묻힐까 봐. 맥주 한 모금에 너의 눈물을 넘길까 봐. 밤새 흔들던 머리와 어깨가 멈추지 않을까 봐.


너도 그날 그러려고 했겠지? 웃음, 술, 음악, 춤으로 자유를 느끼고 무서운 얼굴들 속에서 달콤함을 맛보며 낮보다 환한 밤을 보내기 위해. 너의 밤은 점점 밝아지고 나의 세상은 어두워질 때 그곳의 소식을 들었어. 온몸의 털이 쏟았어. 몸이 차가워졌어. 심장은 온몸은 흔들어 댔어. 충격은 카페인처럼 퍼져 잠을 쫓아냈어. 핸드폰을 열어 그곳 소식을 찾아봤어. 새벽까지 보다 손에 핸드폰을 쥔 채 엎드려 잠들었어. 혼자 중얼거리며 잠들었어. 무사하겠지, 별일 없겠지, 모두 일어나겠지.


얼마 되지 않아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벌떡 일어났어. 핸드폰을 열었어. 화면에 뜬 그 숫자. 믿어지지 않는 세 자리 숫자. 숨이 멈췄어. 그리고 한 번에 몰아쉬었어. 들숨 날숨이 뒤섞이면서 어지러웠어.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랐어. 두리번거리다 핸드폰을 보고 다시 두리번거리고. 그날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였어.      


‘정말,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지만, 알려고 했지만 아무도, 그 누구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어. 되레 죽은 자의 탓으로 돌렸어. 왜 거기에 갔나고, 왜 축제를 즐겼냐고. 말할 수 없는 자들의 탓으로 말이야.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았어. 듣고 싶었지만 사과하라 했지만 아무도, 그 누구도 진심으로 하지 않았어. 또 되레 죽은 자의 탓으로 돌렸어. 왜 거기에 갔나고, 왜 축제를 즐겼냐고. 말할 수 없는 자들의 탓으로 말이야.


아무도 알아내지 않았어. 누구인지, 누구의 자녀인지, 누구의 친구인지. 누구의 형인지, 누구의 동생인지,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지, 언제 그랬는지. 어디로 갔는지. 또 되레 죽은 자의 탓으로 돌렸어. 왜 거기에 갔나고, 왜 축제를 즐겼냐고. 말할 수 없는 자들의 탓으로 말이야.


아무도 위로받지 못했어. 함께 울고 싶었지만, 눈물을 주고받고 싶었지만, 안아주고 싶었지만 누구를 위로해야 할지 몰랐어. 백오십구 명의 죽음이 한 사람의 죽음 같았지. 사진 없는 분향소에서 흘린 눈물은 내 발만 적셨지. 또 되레 죽은 자의 탓으로 돌렸어. 왜 거기에 갔나고, 왜 축제를 즐겼냐고. 말할 수 없는 자들의 탓으로 말이야.


아무도 제 탓이라 하지 않았어. 사람을 찾기 바빴어. 대신 욕먹을 사람을, 대신 돌 맞을 사람을, 대신 죽을 사람을. 그리고 네 탓이라 묻는 자들에게 서슬 퍼런 법을 목에 겨눴지. 또 되레 죽은 자의 탓으로 돌렸어. 왜 거기에 갔나고, 왜 축제를 즐겼냐고. 말할 수 없는 자들의 탓으로 말이야.      


‘정말,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백일만에 왔어. 늦었지. 그동안 무섭고 미안했어.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았어. 분향소를 둘러싼 몰상식한 문구의 현수막이 제일 먼저 눈에 띄더라. 일상과 슬픔을 억지로 나눈 경계선 같았어. 공사 현장같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처럼 말이야. 그런데 국화를 놓고 사진들과 눈 맞춤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이곳은 슬픔만 미안함만 위로만 머무는 곳이잖아. 오히려 여길 벗어나기 싫더라. 현수막 너머의 세상은 잔인한 곳이잖아. 인간의 본성보다 우선으로 취급되는 혐오스러운 자유가 넘치는 곳.   


그 거리도 걸어봤어. 벽에 붙어있는 수많은 메모와 편지도 읽었어. 한 명도 다니지 않는 그 거리를 한참 동안 바라봤어. 그리고 우리를 잊지 말라는 159명의 영혼과 가족들을 떠올렸어.     


나는 기억할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들을. 울음을 막은 자들을. 슬픔을 짓밟은 자들을. 아픔을 비웃은 자들을. 삶을 정지시킨 자들을.


우리는 기억할 거야. 그 자들에 의해 시들어간 꽃들을, 아름다웠던 젊음을, 남겨진 슬픔을, 치유되질 않을 아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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