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새해부터 몸살이 났다. 위염으로 시작해 근육통까지 생겨 휴가까지 내며 쉬기로 했다. 연말 바빴던 회사일의 후유증인듯하다. 난생처음 수액을 맞았다. 이렇게 아파본지도 오랜만이었지만 한 살 더 먹은 시점에 몸이 아파 건강을 더 챙겨보자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장모님께 전화를 했다. 평소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장모님의 가게로 가서 소일거리를 돕던 아내도 남편이 아프다며 나가지 못한다고.
병원을 다녀오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내가 말했다. 장인, 장모님이 오시기로 했단다. 갑자기라며 놀라자 사위가 아프다고 하니 저녁을 사주시겠다는 이유였다. 나는 안 그러셔도 되는데 말끝을 흐렸다. 아내의 입을 건너 전해온 장인장모님의 말은 거실 창으로 넘어온 햇살처럼 온몸이 따뜻해졌다. 한치의 오염 없이 전해졌다. 부모의 품 같았다.
아이가 하원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장인장모님이 집으로 오셨다. 내가 현관문을 열자 좀 어때 라며 몸보다 걱정을 먼저 들이미신다. 병원 다녀와서 좀 나아졌다며 걱정을 멈춰 세웠다. 아내가 왔어하며 반기자 장모님이 한마디 했다
“네 아빠는 사위 아프다니까 울더라”
난 입꼬리가 올라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집안엔 훈훈한 정적이 흘렀다.
부모를 일찍 잃은 나에겐 장인, 장모님은 부모님과 같다. 아이에게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아니라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다.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장모님도 결혼 초기부터 큰 아들 하나 얻었다고 생각한다며 이젠 우리 가족이라고 말해 오셨다. 마흔이 다된 나이에 부모님이 생긴 것이다. 부모가 생겼다는 것은 오로지 내 편이 생긴 것이고 내편이 생긴 건 날 위해 울어줄 사람이 생긴 것이다. 때문에 환갑이 넘는 나이에 아들 하나 얻어 눈물 거둘 날이 더 늘어나셨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울어줄 사람이 늘어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어른이 되는 건지도. 자식 때문에 울다가도 자식 또래 일에 울고, 사위와 며느리를 보고 울다가도 남의 집 가정사에 울고, 손주 보고 울다가도 아이들만 보면 글썽이는 사람. 이렇게 관계를 넘나들며 세상에 눈물을 뿌리는 사람들이 어른이 아닐까 하고.
나도 평생 눈물 머금을 아이가 있고 아내가 있고 장인 장모님이 계신다. 아이는 성장하고 아내와 난 함께 늙어가며 어른이 되어 갈 것이다. 그러는 동안 흘리는 눈물들이 세상을 적시고 씻어내고 일으켜 세우는 자양분이 되면 좋겠다. 우리들도 그 눈물로 자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