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퀴즈 온 더 블럭> 취준생 편을 보고
유투브의 알고리즘은 신기하다. 내가 실업자로 지내던 시절, 갑자기 <유퀴즈 온 더 블럭>의 '취준생'편을 추천으로 띄워주었다. 별 생각 없이 재생했다가 당황했던 이유는 영상의 첫 주인공이 서울대 학생이었기 떄문이었다. 제목으로 짐작했을 떄 평범한 학생들이 나오겠거니 싶었는데 영상의 방향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영상에 나오는 학생들은 서울대를 다니거나 경영학을 전공하며 회계사를 준비하고 은행 취업을 준비하는 등 평균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그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매우 일반적인 모습일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이게 우리 사회가 떠올리는 평범한 학생의 삶이어서는 안 된다.
대충 계산을 해봐도 전체 수험생 중 인서울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15% 미만이다. 그러니 수도권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은 이미 이 사회에서 평균보다 훨씬 상위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디어에서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며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사회의 대표격으로 내세운다.
전국 상위 1% 학생들이 가진 문제를 '평범한 고민'으로 둔갑시키는 건 나이브할 뿐 아니라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 스스로가 실패자가 아닌지 자문하게끔 만들어버리므로 위험하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링 위에서 스스로의 문제와 싸우며 살기에, 누가 더 힘들고 덜 힘드냐를 가리는 것 자체는 무의미하다. 그 학생들은 진심으로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불투명한 앞날을 걱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고민이 '우리 사회의 평범한 대학생'의 문제로 치환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걸 미처 몰랐다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위에서 언급한 유퀴즈 에피소드를 보면서 자꾸만 이 문장이 떠올랐다. 평범함마저 도둑맞고 패배자가 아니면 스스로를 설명할 길이 없어진 우리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 말이다.
작년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2%가 넘는다. 재수생도 포함된 통계일 것이니,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교 문턱을 넘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지만 대졸 임금노동자의 약 절반 가량이 월 200만원도 받지 못 하는 게 현실이다. 절반의 목소리,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할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는 어디로 간 걸까? 그렇다. 성과급 잔치를 했다는 대기업들을 다룬 기사, 초봉이 5천 만원도 넘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명문대생의 이야기들에 밀려 사회에서 지워졌다.
우선 언론종사자들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 취준생들의 고난을 다룬답시고 명문대생을 찾아가 인터뷰하는 게으름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회에서 지워버릴 수 있음을 인식하고, 제작하는 컨텐츠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
삼성 이재용이 증여세 얼마를 내야 하고, 정용진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뭘 포스팅 했다느니 하는 기사를 소비하는 대신에 삼성전자의 협력업체 노동자가 어떤 근무환경에서 일하는지, 아웃소싱으로 일하는 신세계 백화점 콜센터 직원은 얼마의 월급을 받는지를 더 궁금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게 바로 평범한 사람,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환경은 반드시 더 나아져야만 하고 더 나아질 수 있다. 생활 물가에 비해 노동자의 임금이 너무나 적다. 한국 특유의 군대식 회사 문화 탓에 휴가를 마음껏 쓰거나 워라밸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시장의 변화가 자꾸 지체되는 건 아무도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데다가 사회는 이들을 위해 아무 대안도 내놓고 있지 않아서다.
나는 재벌가문의 이야기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어느 연예인이 으리으리한 주택에 살며 아이를 키우는 일상은 더더욱 알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이제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을 알고 싶다. 한 달에 30만원씩 겨우 저축하는 직장인들, 학자금 대출을 갚으면서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의 목소리가 더 듣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