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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n Aug 30. 2021

나의 다이어트 강박과 식이장애 - <발단>

누군가 나에게 식이장애가 시작된 지점을 묻는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덩치가 크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레몬 디톡스같은 초절식 다이어트를 하다가 결국 폭식이 터지고 다시 학대에 가까운 다이어트에 돌입하던 20대 중반? 석식을 토하기 직전까지 먹고도 빵과 과자를 욱여넣은 채 걷기도 힘든 배를 붙잡으며 야자를 하러 가던 고3 시절? 집에 돌아와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찬장에 있는 모든 간식을 털어먹던 초등학교 때?


나는 식욕이 왕성하고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건강한 체질이다. 음식이 주는 행복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어서 그랬던 건지, 삶의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음식을 찾는 나쁜 습관이 배어버렸다. 이제와서 돌아보면 꽤 어려서부터 마음의 빈곳을 음식으로 채우는 버릇이 있었고 20대가 되면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강박과 맞물려 음식을 향한 집착이 심해진 것 같다.

감자튀김에 <마요네즈>, 맥주 조합은 나의 최애

나의 키는 177cm이다. 이미 초등학교 6학년 때 168cm에 가까웠으니 여자인데 너무 덩치가 크다는 말을 평생 귀에 닳도록 들었다. 그래도 어렸을 때는 다이어트가 뭔지도 몰랐고 할 생각도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니 신입생 여자들은 모두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정상체중인 친구도 블루베리와 체리만 먹으며 살을 뺐다. 마르고 작은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꼭 거인처럼 느껴져서 어느 날 엄마 카드를 빌려 한약 다이어트(가 아니라 그냥 초절식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첫 다이어트가 불러온 폭식과 초절식의 굴레

한약 다이어트를 하자마자 일주일에 4kg가 빠졌다. 당연하지. 첫 며칠은 미숫가루같은 선식과 한약만 먹었으니. 내려간 숫자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그간 참아온 식욕이 한 번에 터졌다. 평소 먹는 양의 2배 이상을 먹었고 오히려 처음보다 몸무게가 더 늘었다. 내가 찾은 대안은 덴마크 다이어트였다. 자몽과 소고기를 하루이틀 먹다가 또 폭식을 했다. 오히려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때보다 더 살이 쪘고 의지가 약하다며 스스로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폭식과 절식의 굴레에 빠져 허우적 거리며 나 자신을 미워하는 데 시간낭비 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아쉽다. 얼마든지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는데 그 때는 왜 다이어트가 행복의 마지막 퍼즐처럼 보였는지.


그게 아닌데. 내 의지가 약한 게 아니었는데.

음식은 우리 몸이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초적인 연료다. 음식을 극단적으로 제한하느라 몸에 영양소가 들어오지 않게되면 뇌가 생존모드를 가동시켜 오히려 폭식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기름기가 다 빠진 단백질과 비정제 탄수화물로 끼니를 떼우며 1500칼로리를 겨우 먹는 건 자기관리가 아니라 자기학대라고 불러야 한다. 자기관리를 가장한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없던 식이강박을 만드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시치미가 팍팍 들어간 크림파스타에 구운감자 샐러드. 샐러드에는 찐 감자를 으깨서 올리브오일을 발라 오븐에 구워 간장소스를 곁들였다.

다행히도 나의 경우에는 생활이 바빠지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무서워하거나 배가 부른데도 자꾸 음식을 찾는 버릇이 자연스레 고쳐졌다. 동아리에 들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3년 간의 휴학 끝에 학교로 무사히 돌아가 정신 없이 지내니 살도 저절로 빠졌다. 세상엔 음식 말고도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았다. 

딱히 음식을 제한하지 않고도 편안한 몸무게를 계속 유지하다보니 음식을 먹을 때 더이상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독일에 살면서부터 음식과 다이어트 강박에서 훨씬 자유로워졌다. 독일에는 정말 다양한 체형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 모두 각자가 제일 편한대로 입고 다닌다. 키가 크다고 해서 굳이 움츠러들 필요도 없다. 하루에 한 번은 나보다 키가 큰 여자들을 보기도 하니까. 게다가 나는 외국인이기에 이 사회가 여자에게 기대하는 미의 기준은 알지도 못 하고 알 필요도 없다. 그냥 내가 입고 싶은대로 입고 먹고 싶은대로 먹으면 된다. 

두부면으로 만든 갈릭버터 파스타, 타마린느 소스와 구운 두부가 잔뜩 들어간 홈메이드 팟타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자전거 타기와 달리기를 하면서 예쁜 몸매를 갖고 싶다는 생각보다 신체의 기능에 더 집중하게 됐다. 허벅지와 종아리에 근육이 잡히는 게 기뻤고 한 달 전보다 더 빠르게,  더 멀리까지 달릴 수 있다는 점이 뿌듯했다. 열심히 땀흘리고 나면 식욕이 돋아서 맛있는 음식이 더더욱 맛있어진다. 내 삶의 목적은 다이어트가 아니므로 굳이 살 찔 걱정은 하지 않는다. 사실 건강하게 움직이고 맛있게 먹으면서 활력 넘치게 살면 몸무게가 크게 늘 일도 없다. 체중계는 늘 나를 배신하지만 내 몸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몸에 들인 노력은 그대로 돌아온다. 매일 운동하면 그만큼 강해진다. 


이렇게 몇 년을 식이장애와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칼로리와 살에 대한 강박을 다 떨쳐낸 줄 알았다. 

아, 이직을 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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