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영원을 약속해

by heyn

기억하려 노력한 적이 없는데도 머리에 남아있는 날짜가 있다. 2018년 2월 23일. 독일에 처음 도착한 날이다. 긴 여행을 가는 것처럼 큰 캐리어에 배낭 하나 덜렁 들고 도착한 지가 어느새 8년. 평생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채로 오지도 않았지만 떠날 시기를 정해둔 것도 아니다. 독일살이에 대한 어정쩡한 다짐은 여전히 그대로인 채 얼마 전에는 영주권을 받아버리고야 말았다.


영주권은 말 그대로 이 나라에서 영구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이다. 주기적으로 소득증명서나 노동계약서를 외국인청에 들이밀며 '이것보세요 저는 이 나라에서 할 일이 있답니다'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국회의원 투표권은 생기지 않고 국적이 바뀌는 것도 아니지만 생활을 꽉 잡아주는 안전망임에는 확실하다.


영주권이 나왔다고 해서 느껴지는 변화는 없다. 몇 년 마다 돌아오는 비자 연장에 맞춰 서류를 준비하는 수고로움을 덜었고 갱신할 때마다 지불했던 100유로를 아낄 수 있다는 정도일까. 새해 첫날의 태양이 그러하듯 내 하루는 이전과 같이 흐른다. (이 글을 새해 전에 완성하려고 했는데 설날까지 미뤄진 점에서 이미 영주권의 입지가 증명됐다) 평일이면 직장에 나가고 어떤 저녁에는 친구들과 묵은 이야기를 털어내고, 주말은 맛있는 걸 해먹고서 자전거를 타는 나날들.


다만 그 플라스틱 카드 한 장은 독일에서의 지난 시간을 주우욱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독일로 부른 것은 조건들이었다. 마치 인생이 단박에 나아질 것처럼 들리던 수많은 장점들. 하지만 나를 독일에 남게 해준 건 계산기 결과값이 아니었다.


한국에 사는 동안에는 시선이 늘 미래를 향해있었다. 인간의 가장 큰 능력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여 믿는 것이라해도 행복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인생의 추가 미래에 가있던 시절, 내 발은 늘 허공에 둥둥 떠있었다. 걷기는 하는데 도무지 나아가지지 않고 아무리 움직여도 주변 풍경은 그대로. 걸으면 걸을수록 좌절감만 쌓이고 결국 제자리인데 왜 힘들이냐며 무기력에 빠진 시간들도 기억난다.

IMG_2070.JPG 30유로 주고 중고로 산 필름카메라로 꽤 재미를 보는 요즘

독일에 와서 가장 크고 소중하게 자리잡은 배움은 발을 땅에 단단히 붙인 채 현재를 사는 태도다. 이곳에 오고나서 처음 몇 년은 상상도 못 했던 크고작은 문제가 끊임 없이 닥치는 바람에 눈 앞의 일만 처리하기도 급급해서 미래를 볼 여유라는 건 없었다. 내가 눈물 올림픽이라고 마음대로 이름 붙인 사건사고들 중에서 금메달은 단연 실직과 비자 갱신이 겹쳤을 때다. 독일에 살면서 이런저런 문제로 직장을 잃은 적이 2번 있었고, 그 중 한 번은 비자 만료를 3주 남겨두고서야 겨우겨우 일자리를 구했다. 단 한 문장으로 간단히 압축했지만 사람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상황 중 하나가 '강제성'이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체감한 시기였다.


이직과 판데믹의 타이밍이 황당하게 겹쳐서 새 회사에 하루도 출근을 못해보고 짤렸을 때는 매일 아침을 대상 없는 분노로 시작했다. 눈을 떠서 할 일이 없고 갈 곳이 없다는 게 그렇게 막막할 줄이야. 희망과 기쁨은 바스러지고 내게 남은 건 정해진 날짜 이전에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 그렇지 않으면 우리 동네와 우리집을 떠나야 했다.


원망할 대상조차 부재하니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속에서 고여 썩어갔다. 달리기와 자전거타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그 때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 마시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채 집 근처 숲을 한 바퀴 뛰는 게 그렇게 좋았다. 그 안에서는 악악악 소리지르면서 울어도, 갑자기 뛰다 말고 멈춰서 땅을 발로 차도 나를 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뛰고 집에 돌아와 씻고 커피를 마시면서 독일어를 공부하는 게 실직한 몇 달간의 일상이었다. 대체 그 어마어마한 양의 감정이 녹기나 할까 싶었는데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보니 상황은 그대로여도 마음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지금에 와서 미화된 기억으로 돌아보면 인생에서 가장 재밌었던 시기로까지 느껴진다.

IMG_9353.jpeg 소중한 나의 친구, 자전거

아마 독일 생활에 위기가 왔을 때 어설프게 새로운 미래 계획을 세우거나 비자가 그대로 만료될 경우의 절망 시나리오를 대량 작성해서 모든 상황에 미리 대비하려고 했다면 절대절대로 깊은 슬픔과 불안을 극복하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극복이 문제가 아니라 더 깊은 덫에 빠졌을 것이다. 문제를 미리 상상하여 대비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버리는 사람. 평생 인생이 가져오는 변화와 두더지게임을 펼치는 사람.


영주권을 생각할 때마다 아직도 떠오르는 분이 있는데, 그를 만난 건 각자의 독일 생활 첫 해였다. 심지어 그쪽은 한국에서 도착한지 3개월도 안 됐을 때였다. 독일에 어떻게 오셨냐는 대표적인 스몰톡 질문에 바로 "저는 여기서 평생 살려고 왔어요"라며 이곳 생활의 장점을 나열하시던. 그 뒤로 당연히 연락은 끊겼지만 잘은 몰라도 아마 한국에 다시 가시지 않았을까 짐작하고 있다. 뭐, 모르지만.


우리는 불확실한 마음을 붙들어 두려 안전장치를 만들고는 한다. 가장 믿기 쉬운 건 눈과 머리로 증명이 가능한 대상이다. 영원은 아주 긴 시간이고 그래서 평생을 약속할 때는 현실적으로 조건을 맞춰서 선택해야만 하니까. 100중에 100이 다 맞을 수는 없어도 모든 뺄셈 후에 80정도가 남는다면 맞는 길이겠지 스스로 다독이면서 말이다. 언젠가 후회할 미래의 나에게 들이밀 증거도 될 거고.


독일에서 일하면 휴가가 30일이고, 감기만 걸려도 병가 내고, 유럽 여기저기 여행 다니기에 좋고, 슈퍼마켓 물가가 저렴하고, 노후를 보내기에 좋고. 역시 독일에 영원히 머무르는 게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짜일까? 그리고 이 조건들은 모두 변하지 않는 상수일까?


내가 나열한 장점들이 전부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조건으로 삶을 결정하는 순간 마음은 쪼그라든다. 선택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면 내가 가진 파이가 반드시 다른 선택지의 파이보다 커야만 한다. 그래서 끊임 없이 밖으로 눈을 굴리고 전전긍긍하며 비교하게 된다. 손해본 게 아니었을까 계속 의심하면서. 생활 물가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독일을 집으로 삼았으나, 갑자기 판데믹이 터지고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면서 겉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시작된다면? 다시 계산기를 꺼내야겠지. 이런 곳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내가 답을 말해주겠다. 없다.) 바깥에서 찾은 이유로 지어올린 삶은 무조건 흔들린다.


영원은 선언이나 약속이 아니라 경험으로만 얻어질 수 있다. 영원을 계약해놓고 마음 놓은 채 안전하다 믿고 싶은 게 인간 본성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인간은 지나치게 발달한 나머지 우리가 생물이란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움직임과 변화가 인생의 핵심이다. 우리는 살아있다. 가만히 머무르는 상태는 삶의 속성과 오히려 반대된다. 소중하게 지키고 싶은 것들은 보통 내 삶과 함께 움직이는 속성이 있어서 강하게 가둬둘 수록 멀어진다. 그래서 모르는 건 모르는 채로 놓아두고 그저 경험하면서 알아나가야 한다. 눈을 현재에 고정하고 어떤 미래든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믿는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영원을 보장하는 길이다.


독일에 평생 살게될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내일도 밍기적거리며 일어나 회사에 가고 운동을 한 다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게될 것은 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몸으로 기억되는 아주 작고도 따스한 순간들. 그리고 나와 자석의 빨간 면 파란 면을 하나씩 나눠갖고 나를 이 사랑으로 이 땅에 철썩 붙여주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IMG_0707.jpeg 어쩌다보니 영주권 나온 걸 기념하는 저녁이 된, 동그랑땡이고 싶었던 무언가와 우리가 여름에 사두었던 와인

내가 어디에서 평생 살 건지는 이제 정말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나는 영원히 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말한다. 너에게 영원을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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