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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n Nov 16. 2020

2 - 나의 대학교 시절 (2)

서른 살, 독일,..

이제와서의 이야기지만, 대학교 2학년 때를 되돌아보면 무력함과 우울감에 허우적 거리느라 아무 것에도 의욕이 없었다. 고등학교 내내 입시에 시달리다 막상 대학교에 입학하니 그 어떤 미래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던지도 모른다. 나와는 꿈의 크기부터 다른 사람들을 알게 되며 내가 얼마나 작은 우물에서 살았던 것인지 깨달아버린 탓인지도. 


길고 긴 방황을 끝내게 된 건 1년동안 돈을 모아 그렇게 가고싶던 미국여행을 다녀온 뒤부터다. 

두 번째 뉴욕 여행,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꿈을 꾸면 이뤄지기도 하는구나, 나는 그럼 세상의 멋진 곳들을 최대한 다녀볼래!'


철없는 공상이 의도치 않게 삶에 활기를 가져다 주었다. 학고를 여러 번 맞느라 엉망이 된 성적을 복구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짬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도 나가지 못 하고 집에만 박혀서 미래를 고민하느라 버린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나는 여기저기로 날아다녔다.


가을의 밀라노

하지만 공부에 열의를 되찾았다고 해서 지난 시간을 돌릴 수는 없는 법. 내가 공부했던 학교는 복수전공(부전공)이나 전공심화 중에서 하나를 꼭 선택해야만 했다. 취업이 잘 된다는 경영이나 경제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하기에 내 성적은 턱 없이 모자랐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신청 인원이 미달되는 과가 아니라면 복수전공을 할 수 없었다. 


극도로 적은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관심이 가는 과를 남겨놓고 보니 불어불문과, 독어독문과 두 개가 남았다. 프랑스어는 몽환적인 느낌 때문인지 언제나 인기가 많은 제2 외국어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왠지 배우기가 싫었다. 철자만 보고서는 발음을 짐작할 수 없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독일어는 써진 대로 발음하면 된다는 점이 좋았다. 직관적인 사고를 배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동생 책장에 꽂힌 독일어 사전을 몇 번 뒤적여 본 탓인지 왠지 익숙했다. 이걸 배워서 독일에 가야겠다거나 어느정도 목표까지 독일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취업을 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도 접어두었다. 그냥 눈 앞에 있는 것 중 가장 흥미로운 선택지였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선택했을 뿐.

그 때 불문과를 선택했다면 프랑스에 살고 있을까?
'동생이 프랑스어 사전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리고 의도와는 다르게 독문학을 배우면서 독일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스믈스믈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나는 유학을 준비할 만한 돈이 전혀 없었고, 설령 형편이 넉넉했다 한들 공부에 특별한 재능도 흥미도 없는 상태에서 유학을 선택하진 못 했을 것이다. 유학이 아니라면 취업을 해서 독일로 넘어가는 방법이 남게 되는데, 한국에 있는 사람을 굳이 독일로 불러 채용하는 회사는 찾기 힘들었다. 결국 워킹홀리데이로 독일에 가서 직접 부딪히는 방법만이 남았는데, 이미 졸업이 3년 이상 늦은 상태에서 불확실한 도전을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취직을 하기로 했다. 


이력서에 쓸만한 인턴 경험, 공모전 수상경력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대기업은 당연히 포기했다. 한국은 대기업이 아니라면 말도 안 되는 월급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이력서를 보내면 다음 날 면접이 잡히고 집에 가는 길에 결과를 통보해주는 중소기업을 두 세번 다녔고, 모두 두번째 월급을 받기 전에 그만두었다.


편하게 여행다닐 때가 좋았지..

제대로 취업준비를 해서 근무조건이 나은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는 한, 나는 어느 회사든 계속 그만두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이력서로 구할 수 있는 어느 직장에도 만족할 수가 없었고 그러다보니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됐다. 입시를 죽어라 해서 대학에 왔더니 또 죽어라 공부해서 취직을 해야 하고 회사에 오니까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는.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딱 맞는 채용공고라며 꼭 지원해보라고 링크를 보내주었다. 한국에서 채용을 해서 독일에서 근무를 할 사람을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면접을 보기도 전에 다니던 회사에 퇴사통보를 했다. 


그리고 2018년 2월 23일, 나는 독일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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