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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Aug 24. 2020

해도 티 안 나는 살림 꼭 해야 할까?

나에게도 살림 로봇이 하나 있었으면..

요즘 나는 매일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읽고 쓰는 일이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다 보니, 그동안 우선순위로 여겼던 ‘살림'이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는 중이다. 당장 처리하지 않아도 큰 불편은 못 느끼므로 급한 일부터 먼저 하고 있다. 나에게 현재 급한 일이란, 책을 읽고 생각이 달아나기 전에 얼른 글로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집 안 여기저기에 정돈되지 못한 곳이 보이면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매일 반복되는 살림을 왜 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찾고 싶어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집에는 로봇 청소기가 없지만 요즘 같아서는 하나 구입하고 싶긴 하다. 로봇 청소기야말로 살림에 지친 주부들을 위한 진정한 효자 물건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빨래, 설거지, 청소는 끝나고 나서도 몇 시간 후에 또 해야 하는 건데, 보상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살림을 하면서도 흥이 나질 않는다. 살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한때 살림을 즐겁게 여기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영상도 보고 살림과 관련된 책도 살펴보았다. 살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분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가까운 친정엄마를 보더라도 우리가 어렸을 때 큰 어항에 물고기도 직접 기르시고, 앵무새 두 마리도 키우시고, 꽃과 화분까지 가꾸시곤 했다. 내가 엄마 딸이라면 반이라도 닮아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기본적인 살림이 아직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화분 하나 키우는 것도 숙제처럼 여겨지니 유전적 재능이 아니어도 최소한 다른 요소가 필요한 건지 의문이 생긴다.

 

살림이, 정확히 가사노동이 지겹고 하찮게 느껴져서 제발 집안일 안 하고 살길 간절히 염원했다. 지금은 아니다. 좀 나아졌다. 콩나물을 다듬고 깻잎을 씻고 쌀을 씻으면서, 땅에서 난 그것들을 만지면 마음이 순해지고 위로를 얻는다. 바닥 구석구석에 어질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으며 헝클어진 번뇌를 같이 모아 버린다. 떨어진 단추를 달고 터진 솔기를 꿰매면서 벌어진 마음의 틈을 메운다. 해 드는 오후 마루에 앉아 빨래를 반에서 반으로 접으며 미련과 회한을 접는다. 날 괴롭히는 것이 날 철들게 한다더니 살림이 그렇다. [올드걸의 시집, p82]


은유 작가님의 올드걸의 시집을 읽고 있다. 살림을 이토록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문장이 또 있을까 싶다. 흔히 해도 티 안 나고 안 하면 티 나는 살림이라 하지만, 그래도 솔직해지자면 뭐라도 해 놓는 게 훨씬 낫다. 우선 청소를 하면(아주 잠깐이지만) 집 안 곳곳이 깨끗해진다. 자잘한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고, 쌓여있던 먼지를 훔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밀려있던 빨래를 하면 남편이나 아이들이 입을 옷이 생겨 발을 동동 구를 필요가 없다. 식사 메뉴를 미리 정해서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놓아야 나중에 허둥지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쌓여있는 설거지를 해야 다음 식사 때 깨끗한 컵과 접시로 밥을 먹을 수 있다. 이렇듯 살림을 잘하면 일상이 편리해진다. 게다가 저자의 말대로 의식을 부여하면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고 정돈하며 위로까지 얻을 수 있다. 매일 마주하는 머리카락, 식재료, 빨래에서 의미를 되찾는 일은 분명 가치 있는 일임을 책을 읽으며 깨닫는다.


경단녀가 되어 전업주부로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살림=전업주부'라는 공식을 스스로 적용하며 어깨에 짐을 지고 지낸 것 같다. 종종 집안일을 도와주는 남편이 있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살림은 누군가는 꼭 해내어야만 가족의 평안한 일상을 보장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평균 연령 100세 시대에, 살림만 하면서 남편 월급만 바라보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남편도 언제 은퇴할지 아무도 모른다. 나도 남편도 디지털 노매드나 N 잡러를 꿈꾸는 세상이 와버렸다. 급변하는 시대에 가까운 미래까지 예측할 수 없으니 일단 손에 잡히는 책을 읽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살림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진다.



가끔 아이들에게 농담으로 이런 말을 던진다. " 우리 집에 엄마를 도와주는 로봇 하나 있으면 좋겠어". 아들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지 벌써부터 로봇에게 무슨 이름을 지어줄지 궁리한다. 집사 노릇을 해주는 로봇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청소 빨래 설거지를 비롯하여 8대 필수 영양소를 골고 루 갖춘 매끼 식사까지 준비해준다면?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의 노동을 대체해줄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정보를 접하면서 주부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집안일을 대신해줄 동안 나는 살림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리고 열심히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행복한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공부하는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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