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5시 50분. 벌써 세 번째 울리는 알람이다. 오전 5시 30분부터 10분마다 울려대는 이 알람을 당장 끄고 일어나지 않으면, 나의 새벽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비몽사몽 알람을 끄고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화장실에 들어간다.
코로나 19가 제아무리 위협을 가해도 할 일은 해야 한다. 바이러스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집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일은 물론, 겨울방학을 맞이한 두 아이의 학습을 봐주고 삼시 세끼를 책임져야만 한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왠지 모를 무기력증이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나도 코로나 블루?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뭔가에 쫓기는 듯 분주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정작 나만을 위한 시간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기분 전환을 한다는 핑계로 온라인에서 쇼핑하고 SNS를 기웃기웃했지만, 순간의 즐거움은 그때뿐이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외출이 자유롭지 않으니 선택의 폭이 한없이 좁아졌다. 눈에 보이는 대로 책을 펼쳤다. 적어도 책을 읽을 때는 잡생각이 나지 않으니까 읽고 또 읽었다. 마음이 답답할 때 책은 나에게 산소호흡기 같은 존재였다.
책을 읽다가 사람은 도전하고 성장할 때 비로소 성취감을 느낀다는 문구를 발견했다. 그리고 성취감은 행복을 느끼는 기분과 높은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한 남편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서가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과연 성취감을 위해 무언가에 도전한 적이 있었나?’ 자문할수록 씁쓸한 기운만이 맴돌았다.
그동안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환경을 탓했다. 그렇지만 평범한 일상을 지켜낼 수 있도록 모든 것은 늘 제자리에 있었다. 변화해야 하는 건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자기 계발서를 읽기 시작했다. 한참 무언가를 향해 달려갈 20대에도 느껴보지 못한 내적 동기가 발생한 순간이었다.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읽고 습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얻게 되었다. 김미경 선생님의 《리부트》를 읽으며 뭐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코로나 19로 인한 대혼란 속에서도, 누군가는 규칙을 찾고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발견한다고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을 탓하는 대신 무언가에 새롭게 도전하는 게 훨씬 나을듯해 보였다.
먼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버릇을 고쳐보기로 했다. 그동안 아이들이 꿈나라로 가면 나만의 시간을 누리느라 눈이 풀려도 새벽 2시까지 넷플릭스를 보며 버텼다. 아이들이 나를 깨우면서 시작하는 아침 기분은 영 상쾌하지 않았다. 매번 허둥지둥 하루를 시작했기에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새벽에 무엇을 해야 할까.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까지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해보기로 했다면, 가장 좋아하는 일을 마음 편하게 해 보기로 했다.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산책을 해보고 싶었다.
처음 며칠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기까지 많은 질문과 자기 합리화를 마주해야만 했다. 돌덩어리 같은 눈꺼풀을 깜박깜박하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내면의 나는 지금 당장 일어나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는 그냥 망한 것이라고 극단적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만약 혼자가 아닌 함께의 힘을 빌린다면, 새벽 기상이 더 수월해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미라클 모닝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분들과 함께 온라인 인증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내가 인증하는 시간보다 한두 시간 더 일찍 일어나 이미 일과를 시작하는 분들을 보며 좋은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매일 묵묵히 새벽을 여는 분들과 함께하니 나도 어느새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되었다.
새벽에는 생각보다 많은 일이 일어난다. 내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을 동안 어떤 사람은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어떤 사람은 내가 원하는 위치에 이미 도달한 채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들에게 새벽은 수면 시간이 아닌 활동 시간이다.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p51
지난 6개월 동안 새벽에 기상하며 느낀 점은, 자신의 목표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잠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찍 일어나야 하는지, 분명한 목표를 만들지 않으면 새로운 습관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고요한 시간에 대한 간절함이 내가 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비몽사몽으로 알람을 끄는 그 순간은 여전히 힘겨운 싸움의 연속이다. 무의식적으로 알람을 끄고 다시 잠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알람이 채 울리기 전에 눈이 먼저 떠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변화를 경험하고 나서 성취감은 물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새벽의 맛을 알아버렸다. 달콤한 맛을 알아버렸으니 무기력했던 예전으로 돌아가기가 싫어졌다. 간절히 찾아 헤맸던 탈출구를 발견했으니까 이제 신나게 즐기다가 돌아오면 되는 거다.
오전 5시 50분. 아직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이지만, 새로운 도전을 향한 내 열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