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물다섯에 결혼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 되어 정신없이 바빴는데, 뭐가 그리도 급했는지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준비기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일찌감치 독립을 시작한 나는 계란 프라이 하나와 라면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곤 했다.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맛집을 가도 '여기가 왜 맛집이지?' 의아해하며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먹는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니 요리를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 터. 신혼 때 남편이 나보다 요리를 더 많이 했다.
미각이 발달하지 않은 나와 달리 남편은 자타 공인 미식가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시무룩해진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남편이 미식가가 된 배경에는 시어머니의 섬세함이 녹아든 요리 실력이 한몫 더했다는 것을.
어느덧 결혼생활 16년 차. 시어머니 어깨너머 배운 음식의 가짓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똑같이 맛을 못 내어도 웬만큼 흉내 낼 수 있는 메뉴는 몇 가지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가히 따라 할 수 없는 음식이 하나 있다면 바로 부추전이다.
어머니는 일 년에 한두 번 모이는 가족들을 위해 집밥을 손수 만드신다. 외며느리인 나는 어머니 옆에 딱 붙어서 조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앞치마를 두른다. 부추전은 어머니의 단골 메뉴로 항상 등장하는데, 전을 만들 때 반드시 넣어야 하는 재료가 있다. 통통한 오징어 한 마리다. 오징어를 손가락 마디 크기로 자른 다음 소금과 후추를 살짝 뿌린다. 오징어 속살 사이로 간이 짭짤하게 스며드는 동안, 부추를 흐르는 물에 씻어 물기를 털어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부침가루와 밀가루를 1:1 비율로 섞은 다음 물을 부어 되직한 반죽을 만든다. 이때 반죽량이 부추의 양보다 많지 않도록 한다. 반죽에다 부추를 넣어 꼼꼼하게 잘 버무리고, 잘게 자른 오징어를 넣어 골고루 섞어준다.
"오징어를 자를 때는 결이 중요해. 몸통을 넓게 피고 머리를 위쪽으로 향하게 한 다음 세로로 잘라야 한다. 그래야 익어갈 때 반죽에서 튀어나오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디테일에 흠칫 놀랐다. 오징어가 열을 받아 몸이 점점 오그라들 때, 반죽에서 분리되어 기름 위에 통통 튄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었다.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국자에 반죽을 떠서 원을 그리듯이 얇게 펴준다. 이때 반죽을 프라이팬 크기만큼 넓게 펴지 않는다. 딱 두 입 크기다.
작고 동그랗게 올린 반죽은 이내 치이익 소리를 내며 익어간다. 반죽 안에 숨어있는 투명한 오징어 살도 점점 하얗게 변해 간다. 가장자리가 노릇노릇하게 연한 갈색빛으로 변하고 있다면 성공이다. 반죽을 넓게 펴면 속까지 골고루 익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기름을 많이 먹지 않게 하려는 어머니의 의도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프라이팬 위로 올라오는 고소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다 못해 입안에 군침이 맴돌게 한다. 어머니께서 전을 부치는 동안 나는 옆에서 침만 꿀꺽 삼킨다.
다 익은 부추전을 한 입 먹어보라고 건네주신다. 바싹하게 구워진 부추전은 입안에서 고소한 풍미를 풍긴다. 함께 씹히는 쫄깃쫄깃한 오징어의 맛은 일품이다. 부추와 오징어의 궁합이 이렇게 잘 맞는 건지 미처 몰랐다. 다소 밋밋할 수 있는 부추 식감에 씹는 재미를 더해주는 오징어는 MSG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다. 어머니 옆에서 요리는 섬세함을 뛰어넘어 과학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가끔 집에서 어머니표 부추전이 생각나면 혼자 만들어 먹기도 한다. 분명 같은 방법으로 전을 부치는데도, 왜 내가 만든 건 기름에 절인 물렁물렁한 식감인지 미지수다. 혹시 불 조절을 실패한 걸까? 프라이팬을 바꿀 때가 된 건가? 하지만 어머니의 프라이팬은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거라 애꿎은 프라이팬을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부추를 왜 먹어야 하는지도 몰랐던 나는 이렇게 맛을 배운다. 이제 적어도 바삭함과 물렁함은 구별할 줄 아니까 남편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어머니의 요리 실력을 따라가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 해가 거듭할수록 요리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나의 둔한 미각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