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라우킴 Jan 30. 2021

아이의 등교 첫날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남편과 내가 공식적으로 학부모가 되는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인사하는 날이라 좋은 첫인상을 심어 주고 싶었다. 옷장에서 안 입던 검은색 정장을 꺼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오버한 것 같기도 했다. 마치 면접이라도 보러 가는 사람들처럼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이의 첫 도시락을 쌌다. 뉴질랜드 공립학교는 점심을 교실 안에서 먹지 않고, 교실 밖에 놓여있는 벤치나 바닥에 앉아 먹는다. 도시락에서 이상한 냄새가 올라와 딸아이와 주변 친구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건조한 음식 위주로만 넣었다. 아이의 등보다 더 큰 가방에 도시락을 넣으며 누구와 함께 점심을 먹을지 궁금해했다. 그저 혼자 쓸쓸하게 먹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에게 교복을 입히고 머리를 이쁘게 빗겨주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신고 오라는 검은색 타이즈와 구두도 신겨 주었다.


학교 주차장에 주차하고 아이와 함께 교실로 걸어갔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이라 그런지 우리처럼 부모님이랑 함께 등교하는 친구들도 보였고, 혼자 씩씩하게 걸어오는 친구들도 보였다. 교실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교실 안에는 담임 선생님처럼 보이는 분이 서 계셨다.  갈색 파마머리를 한 백인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키가 매우 컸고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이미 도착한 친구들도 보였다. 수업이 곧 시작할 것 같아 아이를 교실 안으로 들여보내려고 했지만 발걸음을 떼는 모습이 조금 힘들어 보였다. 나도 긴장되고 떨렸지만 아이가 눈치채지 않게 애써 미소 지었다.


아이를 안심시키고 교실 안으로 들여보내는데 마침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은 교실 밖에 서 있는 우리를 보고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왔다. 남편과 나는 반갑게 인사하며 소피아의 부모라고 소개했다. 뉴질랜드에 온 지 6개월밖에 안되어 수업내용을 따라갈 때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잘 부탁한다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상냥하고 친절한 선생님이길 바랐다. 그러나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선생님은 잘 웃지 않았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걱정하지 말라는 짤막하고 건조한 말만 남긴 채 교실로 다시 들어갔다.


남편은 학교 주차장에서 회사로 바로 출근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얼떨결에 학부모가 되어버린 나는 딸이 학교를 시작한 첫날에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우리 엄마도 나를 학교 보냈을 때 이런 심정이셨을까. 시계를 몇 번이나 쳐다보았는지 모르겠다. ‘화장실은 제대로 갈 수 있을까? 선생님이 질문하면 대답은 잘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결국 학교 수업이 끝나기 한 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학교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였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지으며 나타날지 또 어떤 말을 해줄지 궁금해하며 기다렸다. 하교 시간이 다가오자 나처럼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 나처럼 아이의 새 학기 첫날이 어땠는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몇몇 학부모는 교실 밖에 서서 안을 들여다 보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문 밖에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백번이고 천 번이고 교실 안을 훤히 꿰뚫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드디어 수업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교실 문을 열고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같은 교복을 입었지만 검은 머리 우리 딸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이가 나를 보자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소피아, 오늘 학교 어땠어? 재밌었어?"

"응. 재밌었어."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얼마나 애를 태웠던지. 마음이 놓이고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수업할 때 어려운 건 없었어?"

"응 잘 모르는 게 몇 개 있었는데 그냥 친구들 따라 했어."

"점심시간에는 누구랑 같이 먹었어?"

"여자 친구들이랑 다 같이 먹었어."

“선생님은 안 무서웠어?”

“응. 하나도 안 무서웠는데? “

"그래 다행이다. 아참, 화장실은 잘 갔어? 어떻게 갔어?”

“그냥 손들고 ‘화장실'이라고 얘기했어.”


끊임없는 질문에 아이는 담담하게 대답하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밝았고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하루 반나절을 걱정과 불안에 시달린 채 시간을 허비한 나 자신이 다소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엄마의 모습이 아이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아이는 부모가 믿는 만큼 자란다고 했던가. 내가 믿음의 그릇을 키우지 않으면, 아이는 엄마의 불안한 그늘 안에서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걱정이 담긴 말 대신 아이를 믿고 응원한다는 말을 더 많이 전해야 할 것 같았다.



이전 03화 누군가 아프면 불안에 떨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