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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Dec 04. 2020

누군가 아프면 불안에 떨었다


뉴질랜드에 정착하면서 행여나 어린 두 아이가 아플까 봐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병원이라도 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생소한 의료 시스템에 의존해야 하는데, 현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왠지 모를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 미리 걱정하며 불안해했다.


둘째가 유치원에 등원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있었던 일이다. 집에 있던 나는 유치원 번호로 걸려온 핸드폰 화면을 본 순간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분명 지금쯤이면 오전 간식을 먹고 한참 잘 놀고 있을 시간인데 무슨 일로 전화가 온 걸까. 혹시 놀다가 다쳤나? 아니면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기라도 하는 걸까?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전화를 받았다.


나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이가 손가락을 심하게 다쳤으니 당장 유치원으로 와달라고 했다. 유치원 교실과 놀이터 중간에 슬라이딩 도어가 있었는데, 문 주변에서 놀다가 아이 손가락이 문에 껴서 다쳤다는 것이었다. 뭔가에 홀린 듯 나갈 준비를 하는 나를 보고 마침 일찍 학교를 마치고 온 첫째가 물었다.


"엄마, 무슨 일이야?

"소피아, 빨리 차에 타. 지금 동생 데리러 가야 해. 다쳤나 봐"

"정말? 많이 다쳤대?"


얼마큼 다쳤는지 선생님께 물어볼 새도 없이 전화를 급하게 끊고, 차에 시동을 걸어 전속력을 다해 유치원으로 향했다. 유치원에 도착하니 둘째는 힘없이 울고 있었고, 선생님이 아이 손에다 아이스팩을 대주고 있었다. 아이의 손은 이미 붕대로 한 겹 감겨 있었지만, 붕대 밖으로 비치는 피를 보니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혹시 손가락이 잘려나간 건 아닌지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선생님도 눈 깜짝할 사이에 생긴 일이었다며, 정확한 상황은 설명하지 않고 얼른 응급실로 데려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알겠다고 하고서 급한 마음으로 병원으로 떠났다. 병원까지 가는 동안 수술 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우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들어가니 이미 대기 중인 사람들이 몇 명 보였다. 하지만 언제나 아이들이 우선인 이 나라 시스템이라 그랬을까. 생각보다 빨리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하얀 가운 대신 평범한 캐주얼 차림으로 나타난 의사는 아이 손을 보더니 다행히 꿰매도 되지 않는다고 안심시켜주고선 적절한 응급처치와 함께 약을 처방해 주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둘째는 유치원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앞니 중 하나를 잃었고, 첫째는 학교 철봉에서 떨어져 발목에 깁스를 차야했다. 또 새벽에 자다가 원인 모를 두드러기가 온몸에 퍼져 응급실에 가는 일이 몇 번씩 반복되다 보니 정말 온전한 정신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게 힘이 들었다. 도대체 왜 힘든 날은 한꺼번에 찾아오는 걸까.


아이가 다치거나 아프면 나는 불안에 떨었다.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울면서 기도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치거나 아픈 경우가 있는데도 나는 모든 것을 내 책임으로 돌렸다. 유치원에 가지 않았더라면, 학교에 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후회와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옭아맸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비상약을 사놓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프면 이 약으로, 배가 아프면 저 약으로. 반창고에서 붕대까지 어느새 수납장 서랍은 필요하지도 않은 약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갔다. 나의 불안한 마음을 비상약으로 대신 채우고선, 쌓아있는 약들을 보며 위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착각 속에 빠져 지낸 것이다. 나중에는 유통기한이 지나 먹지도 못하고 버린 것도 꽤 많은데도 말이다.


주변 선배맘들은 말한다. 그건 일도 아니라고. 그보다 더한 것도 많다고. 그리고 앞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도 겪을 거라고. 이런 무서운 말을 들으면 나는 날마다 더 단단해져야 할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은 그 불안이라는 감정 때문에 나의 에너지가 고갈되어가는 것을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stevepb, 출처 Pixabay


아이들이 다치고 아팠던 순간에는 두려웠고 떨렸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필요했을 뿐 놀라운 회복력으로 일상으로 복귀했고, 상처가 생긴 곳에는 딱지가 앉아 이내 새살이 또 돋아났다. 되돌아보면 건강하지 않았던 날보다 마음껏 웃으며 뛰어놀 수 있는 날이 더 많았다.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을까.


바람이 불면 나뭇잎은 따라 흔들리지만, 땅속 깊이 뻗은 뿌리는 거센 바람에도 끄떡없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여전히 흔들리고 불안을 느끼고 있지만, 이제 나의 약한 뿌리를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고 싶다.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뿌리가 튼튼한 엄마가 되어 보자고 스스로 주문을 외워보기로 했다. 나의 근간이 흔들리면 아이들도 함께 흔들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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