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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Jun 01. 2020

우리 집을 처음 만난 날

우리 가족이 살 집은 길모퉁이를 돌기 전 바로 마지막 집이었다. 모퉁이를 돌면 다른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또 다른 구역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만약 길을 잃어버리더라도 집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집은 하얀 펜스로 둘러싸여 있었다. 다른 집들은 펜스 없이 현관문이 바로 노출되어 있었지만, 펜스에 둘러싸인 우리 집은 특유의 아늑함을 품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이 앞마당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공이 차도로 튀어 나가는 상황이어도 왠지 하얗고 기다란 펜스가 아찔한 순간을 안전하게 막아 줄 것만 같았다.

 

집 맞은편에는 나무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안에 작은 못이 있어서 오리들이 종종 찾아와서 놀다가는 그들만의 작은 놀이터였다.


뉴질랜드의 어느 동네든 인적이 드물어서 매우 조용하다. 가끔  앞을 지나다니는  소리만 창가 너머 들릴  사람의 목소리나 작은 생활 소음조차도 듣기 힘들다.  적막함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설게 다가왔다. 사람 사는 동네인데 어떻게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을까. 어색하기 짝이 없는 적막함을 깨는 소리는 다름 아닌 차고에서 나는 소리였다. 뉴질랜드 대부분의 집은 차고가 딸려 있는데 주차할 때나 출차할  차고 문에서 나는 묵직한  소리가 이웃에게 민폐가  정도로 시끄러웠다. 마치 “나 지금 외출해요!” 혹은 “ 지금 집에 돌아왔어요!”라고 동네방네 신고하는 격이었다.


아파트에서만 살던 우리는 계단과 마당이 있는 집을 둘러보며 연신 신기해했다. 아이들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문 앞에 보이는 계단을 올라가 2층에 있는 이방 저 방을 쉴 새 없이 구경했다. 두 돌도 안 된 둘째는 계단이 무서운지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갔다가 다시 기어서 내려오곤 했다.  남편과 내가 올라가기에도 조금은 가파르고 높은 계단이긴 했다.


집 안을 찬찬히 둘러보며 한 달 후에 도착할 이삿짐을 어떻게 배치할지 구상하다가 전 주인이 살다가 놓고 간 몇 개의 가구를 포함해서 창가에 성의 없이 달아놓은 커튼을 발견했다. 꽃무늬가 들어간 진한 상아색의 커튼을 보고 있자니 아직 누군가가 이 집에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살던 곳에서 느껴지는 낯선 이들의 흔적과 향. 이 집에서 쌓은 그들만의 일상과 추억을 내 마음대로 상상해본다.




일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이어져 있는데 주방부터 둘러보았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크기의 주방에는 당장 음식을 만들 때 필요한 가스레인지, 오븐, 냉장고 등 가전제품이 갖추어져 있었다. 싱크대 앞에는 넓은 창문이 있었고, 창문 너머는 뒷마당이 보였는데 잡초와 잔디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내가 매일 설거지하면서 바라볼 풍경이 꽤 이국적으로 다가오면서 이곳이 한국이 아닌 타지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안을 둘러보다 배가 고파졌다. 아쉽게도 우리 가족이  먹을  사용할 식탁이 없었다. 이삿짐으로 보낸  개의 가구들과 짐들은 배를 타고   후에 도착할 예정이라, 당장 밥을 먹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옷가지랑 필요한 소모품이 가득 담긴 커다란 여행 가방이 보였다. ', 여행 가방을 상처럼 써볼까?' 가방을 깨끗하게 닦고 눕힌 다음  위에 햇반과 마른반찬류로 저녁상을 차렸다. 가방이 식탁이 되었다며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새롭고 낯선 집에 들어와 다소 경직된 아빠 엄마와 달리 아이들은 한껏 기대에 부푼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따라 웃으니 긴장이 조금 풀리는  같았다.


밖에는 비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기 시작하니 습한 기운이 올라가 집 안 전체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집에는 난방 시스템이 따로 설치되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이동식 히터라도 사러 가야겠다. 모든 것이 차차 익숙해지고 길들여지길 바라며 우리는 여행가방을 식탁 삼아  끼니를 해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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