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사용설명서
상담심리사는 기본적으로는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이걸 상담 용어로는 경청이라고 하고요. 경청은 흔히 쓰이는 말이기도 하니 그래도 심리상담인데 뭔가 달라야겠죠. 이번 글에서는 상담심리사의 주특기인 경청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더불어 경청이 마음에 작용하는 과정과 원리, 결과에 대해서 이론적인 이야기도 조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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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심리사는 경청을 해요. 경청의 사전적 의미는 '귀 기울여 듣기'인데요. 경청이라는 용어는 일상에서 뿐 아니라 각 전문 분야에서 저마다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는 표면적인 것 안에 들어 있는 속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이해했음을 말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 까지를 포함하는 듯해요. 사전적 정의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실지 모르겠어요. 어떤 분은 '그렇구나. 경청을 해 보자.'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어떤 분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상담심리사로서 이야기하자면 경청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잘 하는 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어요. 사전적 정의에서처럼 경청이 단순히 듣기만 하는 걸 의미하지 않거든요. 누군가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을 동시에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하며 나타나는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해야 하구요. 이걸 위해선 그의 말을 들으며 나타나는 나의 감정을 그가 표현하고 있는 그의 감정과 분리해야 하고 나의 생각으로 그를 판단하지 않고 그의 생각의 흐름을 그의 입장에서 온전히 따라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를 궁금해 해야 하고요. 궁금해 해야 한다는 건 그를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단순히 그의 말이 무작정 옳다고 맞장구를 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그만이 가지고 있는 합리성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어찌보면 이런 작용이 가장 잘 나타나는 건 연인이나 가족일 겁니다. 그런데 그런 관계는 오히려 가깝기 때문에 나의 감정이 크게 일어나고 깊이 개입되기가 쉬워요. 누구보다 그를 위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어디까지가 그에 대한 내 마음인지 어디까지가 온전히 그를 위한 것인지 구분하기가, 그를 사랑할수록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편견없이 판단하지 않고 나의 마음을 깊이 알아주면 그저 말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 지죠. 이땐 소위 말하는 '솔루션'은 필요가 없어요. 아주 자연스럽게 다음 방향으로 몸과 마음이 움직이거든요. 이런 작용이 일어날 수 있도록 훈련된 경청을 하는 것이 상담자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입니다.
훈련된 경청이 치료적 효과를 내는 건 단순히 잘 들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잘 만날 수 있게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건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꺼내도록 만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누군과 대화할 때 나도 모르게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멈출 수는 없는 그런 상태를 경험할 때가 있죠. 이건 그만큼 내 마음에 몰입하게 되어 그 흐름을 그대로 느끼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커져서 그래요. 그날의 온도와 습도, 나의 기분, 상대의 눈빛 같이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지는 그 어느 날, 어느 순간, 어떤 장소에서 우연히 꺼낸 한 마디에 누군가 우연히도 딱 맞는 반응을 해주면 어느샌가 걷잡을 수가 없어 지는 거죠.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걸 그가 싫어하지 않고 받아준다면 어느새 이제는 그가 내 말을 듣는지 아닌지는 상관이 없어지기도 하고요.
누군가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우리는 자유롭게 내 마음을 꺼낼 수 있게 됩니다. 잘 들어주면 더 말하고 싶어지니까요. 남이 볼까 두려워 습관적으로 내가 먼저 검열하고 또 부정하며 가공하던 내 마음을 굳이 꺼냈을 때 상대가 담담히 그것을 들어준다면 우리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안심할 수 있어요. 게다가 상대가 오히려 그 마음을 반가워해주기까지 한다면 자연스럽게 내 안에 있던 것들이 토해 내지게 돼요. 억지로 막고 있던 걸 이제는 막을 필요가 없다는 걸 경험해 버렸으니까요. 이렇게 내 안에 있던 모든 말들을 꺼내보면 혼란스러워 알 수 없고 고통스러워 보지 않던 나의 마음들을 내가 만날 수 있게 되는 거에요. 심리치료의 핵심인 해결되지 않은 감정과 욕구의 해소가 이렇게 시작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잘 들어주면 내 이야기를 토해내게 되는 이유는 나 스스로 버티고 감당하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들을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담아주기 때문입니다. '담아주기'는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윌프레드 비온의 개념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아기가 젖을 먹지 못해서 화가 나고 불안하고 또 슬플 때 엄마가 '아이고 우리 애기 많이 화났어요? 우리 애기가 배가 고팠구나.'라고 하면서 진정시켜 주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엄마가 이렇게 감정을 담아줄 때 아기는 자신의 감정을 알 수 있고 진정시킬 수 있음을 배울 수 있게 돼요. 하지만 엄마가 아기의 모든 감정을 해결해 줄 수는 없고, 또 아기 역시 나만의 깊고 넒은 정신 세계를 만들어 가죠. 언제까지 감정을 진정해야할 때 엄마를 찾을 수는 없어요. 우리는 대부분 이런 역할을 연인에게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든 연인 사이에서도 서로의 모든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죠.
이렇게 누구도 함께 버텨주기 어려울 수 있는 마음의 흐름이 원활해지도록 온전히 내담자에게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는 역할을 하는 것이 훈련된 상담심리사입니다. 상담심리사는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모르는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더 꺼낼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보게 되는 다수를 위한 일반적인 공식과도 같은 솔루션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나에 맞는 해결책을 발견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