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적당히 듣고 좋은 말 해주는 거 아니야?

심리상담 사용설명서

by 프로디언슬립


상담에 대해 "그저 몇 마디 듣고 좋은 말 하는 거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게 어느 정도는 또 맞는 것 같기도 해요. 급체했을 때 손 따는 것처럼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응급처치나 민간요법이 있는 거니까요. 이런 관점에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수행해 일정한 효과를 내는 것이 바로 상담심리사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담의 첫 번째 치료적 효과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표현하는 존재에요. 그래서 심지어 누가 들어주지 않더라도 혼잣말만으로 마음이 진정되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가 이런 효과를 잘 보여줍니다. 혼잣말로도 위로를 얻을 수 있는데,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그 자체로 안정에 큰 도움이 되죠. 상담 끝나고 소감 여쭤보면 “후련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후련하단 건 생각보다 큰 치료적 효과를 가지고 있어요. 이는 정서적 안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후련함이 곧 문제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후련해질 때 마음이 이완되고 비로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건 정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민간요법 같죠? 요즘은 챗GPT 같은 인공지능 챗봇이랑 얘기할 수도 있겠구요. 그런데 생각보다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상대가 많지 않은 게 또 현실이잖아요? 그런 대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말 할 수 없는 건 하나쯤 있게 마련이구요. 그래도 여기까진 민간요법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이런 비밀 얘기를 할 거면 랜덤 채팅 같은 걸 생각해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로 내 얘기를 깊은 관심을 가지고, 또 단순한 동정이나 공허한 편들어 주기 이상의 상대가 되어줄 수 있는가는 또 다른 고비일 것 같네요.


상담자는 이러한 들어주기를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입니다. 안전하고 비판단적이며 지지적인 환경을 세팅하고 내담자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상담심리사의 주요 역할이에요. 그리고 상담자는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것을 넘어 내담자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감정과 욕구를 발견하며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고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며, 나에게 필요한 전문지식을 선택하고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기도 해요.

물론 매우 예민한 주제를 아프지 않게 다루는 것은 훈련된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는 마치 뛰어난 외과의사조차도 수술 과정에서 하나도 안 아프게 치료할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마음의 문제는 신체 질환이나 기계고장 처럼 단순히 환부를 도려내거나 부품을 갈아 끼워 넣고 꿰매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실은 올바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치료라고 할 수 있어요. 해답보다는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 마음이 새롭게 조직되는 게 진짜 치료적 작용인 거죠. 솔루션은 상담자가 제공하는 정답이 아니라, 내담자가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새롭게 조직된 나는 이후 똑 같은 문제를 만나도, 또는 또다른 문제를 만나도 대응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에요.


상담자는 그 과정에서 마치 물리치료 기계처럼 작용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 말은 치료자는 안전한 세팅을 만들고 내담자가 마음을 정리하는 작업을 매 회 조력하고 이런 작업은 기간과 빈도가 기계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내담자와 진행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구요. 또한 내담자 스스로 처치할 수 있는 영역과 범위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에요.

심지어 이것은 치료자 자신이 치료 받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지식과 훈련을 거친다면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자가 진단과 치료가 더 나을 겁니다. 하지만 숙련된 헤어디자이너라도 자기 머리를 할 때는 다른 이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치료자 역시 스스로를 완벽히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이라는 한계에 갖혀서 살아가니까요. 이 글의 맥락과는 조금은 다르지만 마음의 문제는 타인과 연결될 때 비로소 치료될 수 있다는 원리가 있기도 하구요.



상담은 단순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위를 넘어, 내담자가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힘을 키우는 여정입니다.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민간요법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상담자는 이 과정에서 안전하고 지지적인 환경을 제공하며, 내담자가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전문적인 동반자입니다. 상담은 단순히 문제 해결을 넘어, 내담자가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여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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