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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엉 Jul 14. 2016

남의 집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며

 남의 집 가는 것을 좋아한다. 상대를 온전히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미아리는 활기차면서도 찌뿌둥하다. D는 또 약속에 늦는다. 늦었다고 말하기 싫어 일부러 연락하지 않는 것도 여전하다. 좁은 골목길에 들어가 담배를 피운다. 토시를 낀 고등학생 두 명이 흠칫 놀란다.


미아역은 생각보다 크다. D는 행선지를 똑바로 말해주지 않는다. "직진해. 아, 아닌가? 돌아서! 잠시만. 일단 거기 그대로 있어 봐. 아니다, 횡단보도 건너와." 조종당하는 것은 즐겁지만,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난감하다. 멀리 주황색 스커트를 입은 D가 보인다.

"뭐 먹을래?"
"아무거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딱히 없어."
"음, 있을 건 다 있어."
"그런 거 같긴 해."


우리는 일단 걸어 보기로 한다. 자주 보는 사이는 좋다. 제멋대로 굴어도 그러려니 한다. D를 제치고 앞장서서 걸어나간다. 남의 동네 냄새. 유행하는 폰트의 간판이 마음에 들지 않다. 주인으로 보이는 살찐 남자들의 웅성거림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지 못했다. 집으로 가기로 합의한다. 이곳은 정확히 D의 집이 아니다. 열 평 남짓한 그곳에서 둘은 동거 중이다. 


 작은 집은 포근하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산과 구름이 보인다. 싱크대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작은 과도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금속 위에 금속이 놓여 있는데도 차갑다 느껴지지 않는 것은, 두 사람이 머무는 공기가 따뜻하기 때문일 것이다. 


D는 냉장고에서 뭐든 꺼내 먹으라 말하며 침대에 벌렁 눕는다. 일부러 더블사이즈의 침대를 샀다며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침대가 좋은 것인지, 남자 친구가 좋은 것인지. 행복은 전염되는 것이 아니므로 슬프다. 담배를 피워도 되냐고 묻는다. D가 손을 휘적이며 베란다 문을 연다. 잠금쇠는 없었다.


세탁기 위에 재떨이가 놓여 있다. 유리창에 침대에 엎드려 있는 D가 비친다. 가는 종아리가 허공에서 달랑거린다. D의 남자 친구는 몇 번이나 이런 모습을 보았을까. 그는 매일 오후에 출근해 새벽에 돌아오므로, 결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온전히 내 차지다.


 예정보다 일찍 집을 나선다. 헐렁한 원피스로 갈아입은 D는 갓 결혼한 새댁처럼 보인다. 


"너무 아줌마 같나? 이 옷?"

"아니, 좋아 보여."

"이거 이쁘다고?"

"아니 그냥. 좋아 보인다고."

"저녁 뭐 하지? 스테이크라도 해 먹을까? 아, 그런데 소고기 비싸려나. 고기 먹고 싶은데."

"수입 사면 되지 뭐."

"그런가."


  저녁 공기가 말랑하다D는 남자 친구를 사랑하고 있다. 또한 그럴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사랑이 필요할지 몰라. 하고 중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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