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의 연인처럼 마주앉아 굵은 스파게티 가락을 씹었다. 카페의 주인은 두어 번 바뀌었고, 파스타에선 싸구려 소스 맛이 난다. 우리의 우정이 조금 변한 것처럼, 이곳도 그런 모양이다.
여자가 옆집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다.
"저것 좀 봐." 평범한 주택 단지로 장면이 바뀌었다. "뭘?"하고 B가 되묻는다.
"아무것도 아니야."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
그녀는 무언가 참는 표정으로 애써 웃음을 짓는다.
"별일 없지?"
"늘 괜찮긴 하지."
"걱정돼서 그래. 술 좀 그만 마시고."
"나 금연할까?"
"……."
침묵이 부담스러워 다르게 묻는다. 담배를 끊을까. 여전히 듣지 못한 척 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지겨워하는 건 꼭 연인에게만 그러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녀가 나를 포기할까 두렵다.
능숙하게 이야기의 화제를 돌린다. 일본 여행을 다녀 왔다며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담은 쇼핑박스를 내게 내민다. 무덤덤한 미소로 그것을 받는다.
그녀는 반복해서 행복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내가 알아주길 바란다. 불행의 늪에서 간신히 숨을 내쉬기 위해 허우적대는 나.
그녀가 말하는 행복은 모두 그녀의 선물처럼 자질구레한 것들뿐이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싸구려 애정이 담긴 반짝임.
그러한 생각들을 몰아넣으면서,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우리의 관계는 딱 그쯤이다. 함께 있으면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불편하지 않은 친구 사이다.
B는 예쁘다. 오프숄더 드레스가 썩 잘 어울렸다. 한 번쯤 그녀에게 빠질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맨정신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뜨거운 물을 거듭 마시는데도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참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B는 곧 화면에서 눈을 떼고 나를 걱정한다.
"너 괜찮은 거니?"
"곧 낫겠지."
"집에 갈까?"
"아니야. 더 있자."
그녀는 배려심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쌓아온 우정의 크기만큼 그것을 이용한다. 늙은 여자가 자신보다 덜 늙은 여자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알 수 없다.
다시 B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원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낭창낭창한 허리에 밝은 웃음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우정은 막연한 불쾌감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다. 영화 한 편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할 수 있을까. 밖에는 비가 올까? 비를 핑계로 빨리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B의 솜씨 있는 화장을 바라본다. 눈 앞머리가 햇빛처럼 빛난다.
"많이 아프지?"
"응, 좀 심하네. 왜 이러지?"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 진짜 안 좋아 보인다."
"그래, 미안하네.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미안해."
B는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것이 늘 놀랍다. 그 방식이 서툴고, 몹시 자기애적일지라도 나를 위해서임은 틀림이 없다.
적당한 거리에서 B와 작별 인사를 한다. 남자 친구를 만날 것이라고 웃는다. 기름진 소스가 혀끝에서 미끈거린다. 건성으로 손을 흔들면서, 돌아가는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