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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엉 Jul 11. 2016

글 쓰는 여자는 인기가 없다며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이러한 전제를 붙일 때는 괜히 비난받고 싶지 않다는 뜻. 나는 겁쟁이다) 글 쓰는 남자들은 대체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글 쓰는 여자보다 글 쓰는 남자를 찾기 쉽기도 하지만, 무언가 같은 말을 해도 남자가 했을 때 상대 이성의 반응이 훨씬 열렬한 것이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글 쓰는 남자들은 잘생겼어!' 후배 L이 주장한 것이다. 인정한다. 대체로 그들은 잘생겼다. 또한, 공통으로 유순한 양과 같은 눈을 가졌다. 그러나 평범한 외모의 남자도 '글'을 쓴다고 하면 무언가 달라 보이는 것이다. '글'이 뭐길래. 한적한 동네의 술집에서 동기 M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글 쓰는 남자가 왜 좋냐고? 뭐, 난 딱히 좋아하진 않아. 근데 글 쓴다고 하면 달라 보이는 건 사실이야. 글쎄, 글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생각도 많이 해야 하는 거고. 우리 여자들은 생각이 많지. 너랑 나만 해도 하루의 반절은 생각하면서 보낼걸? 그런 거 생각하면 차라리 바쁜 게 나은 것 같기도 해. 남자들이 단순하다는 건 아니지만, 게네는 생각이 없잖아. 너 근데 이거 또 어디가 써먹으려는 건 아니지? 괜히 나 욕 먹이지 마라.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쨌든 글을 쓴다고 하면 뭔가 있어 보인다는 거지. 글 쓰는 여자? 솔직히 흔해. 다만 워낙 감성적이니까 어디 내보이지를 못할 뿐이야. 너무 차별적인 거 아니냐고? 야, 너는 그럼 네가 차이고 쓴 일기. 누구한테 보여줄 수 있냐?"


 젠장. 정곡을 찔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일기를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하게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보였을 때 '이 사람 정말 멋있는데?'하는 찬사를 듣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여자들은 타고난 글쟁이일지도 모른다. 지독히도 자기 위안적인.


"그래서 글 쓰는 남자들은 왜 인기가 많은 거 같아?"

"아니, 너 왜 자꾸 글 쓰는 남자한테 집착하는 건데? 아까부터 이야기하고 있잖아. 글 쓰는 남자들은 저 뭐냐, 그러니까 기타 치는 남자하고 비슷한 거야. 그냥 뭔가 할 줄 안다는 거라고."

"그러면 배관공이랑 비슷한 건가."

"이 얘기 언제까지 해야 돼?"

"오늘 이 얘기만 할 수도 있는데."

"술은 네가 사는 거고?"

"응."
"아, 미쳐 정말."

 

M은 오른쪽 눈썹을 찡그리며 맥주를 주문했다. 도도하게 구는 그녀가 탐탁치 않았지만 애써 비굴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근데 글 쓰는 여자는 왜 인기가 없을까?"

"너?"

"아니, 왜 모든 주제가 다 나로 가는 거야?"

"결국, 네 얘기 하려고 부른 거 아니야?"

"전 문제 없어요."

"그럼 됐고. 글 쓰는 여자는 인기 없나?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공 작가 봐봐. 인기 엄청 많았잖아."

"그런 인기는 좀......."

"자기가 원하는 인기만 가질 수는 없어. 인기가 있어서 악플도 많은 거야."

"아가씨, 주제를 벗어나지 맙시다."

"미안. 근데 인기 없을 거 같긴 하다."

"그러니까, 왜?"

"머리 아파. 스스로도 복잡하다고 생각하잖아. 기본적으로 글 쓰는 애들은 다 그래. 그런데 남자들은 일단 어렵지 않으니까 어려운 척이든 진짜로 어려운 거든 좋아 보이는 거야. 여자는 아냐. 원래도 어려운데 이제 완전히 우주방정식처럼 어려워지는 거지."

"우주방정식이 뭐야?"

"말이 그렇다는 거야. 아무튼, 못 풀어. 절대."

"의지의 차이 아닐까?"

"의지 같은 소리 하네. 너나 잘하세요."


 M은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녀와 대화하다 보면 이야기의 본질이 금세 흐려지고 만다. 그날도 역시 그랬다. 나는 말 없이 어떤 나라의 비싼 맥주를 주문했고, M은 애국자답게 국산 맥주나 마시라고 짜증을 냈다. 우리는 이차로 쭈꾸미를 먹었다. 쭈꾸미는 베트남산이었다.


"그래서 결론이 뭘까."

"아 매워. 뭔 결론?"

"아까부터 계속하던 얘기 있잖아."

"우리 아직도 그 얘기해야 되는 거였어?"

"나 오늘 그 얘기 하려고 너 부른 거라니까."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쓰는 행위 자체가 읽어 주길 바라는 거잖아? 작곡가도 누군가 들어 주길 바라서 작곡하듯이. 분명 독자가 있을 거로 생각하며 글을 쓰는 거지. 그래서 최대한 끌어내려고 노력할 거야. 엉망진창인 걸 보이고 싶진 않잖아? 창작하는 행위를 누군가가 지켜본다고 생각해봐. 근데 그게 멋있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썸? 뭐 그런 느낌?"

"결과보다 과정이라 이건가."

"예를 들자면 단순히 반지를 받았다. 이게 아니라 스토리가 필요한 거지."

"김중배의 다이아반지가 그리도 좋더냐."

"아 뭐야. 김 새게."


 괜스레 말을 돌리며 낄낄댔다. 정곡을 찔려서가 아니라, M이 너무 진지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선 긋기를 멈추기로 했다. 장난스레 그은 선 때문에 혹독한 진실이 파헤쳐질까 두렵다. M은 양 볼이 빨개진 채로 몇 마디를 더 내뱉었다. 듣지 않았다. 사실은 글 쓰는 여자가 인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부러 내어 주지 않는, 고장 난 피에로처럼 제멋대로 춤추고 싶어 하는 나의 성격 덕택일 것이다.


 핑계가 필요한 밤이었다. 결국, 취해버린 우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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